[fn사설] 업자가 ‘셀프 감독’하니 일이 되겠나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3 17:16

수정 2014.10.28 04:30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검찰의 수사가 해운조합·한국선급 등 해운감독기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이 세월호의 안전운항을 제대로 관리 감독했는지가 수사의 초점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수십년간 해양수산부 관료 출신,이른바 '해피아' 낙하산이 이들 기관장 자리를 독식함으로써 고질화된 정경 유착이 이번 참사의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여객선사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을 가진 해운조합은 승선 인원·화물 종류·중량·화물 결박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서류만 보고 세월호의 출항을 허가했다.

그러나 해운조합의 허술한 관리는 사람뿐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해운조합은 위상이 독특하다.
해운업체들이 공통의 이익을 위해 모인 사업자 단체, 즉 협회이면서도 정부로부터 여객선사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을 위임받은 감독기관이다. 여기서 문제의 싹이 돋아난다. 회원사로부터 회비를 받아 운영하는 사업자단체가 회원사들을 엄정하게 관리 감독할 수가 있을까. 결국 '제 목에 방울달기'인 것이다. 업체의 불법과 탈법을 눈 감아 줄 것이니 감독·견제 기능에 큰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상당수 금융관련 협회들은 업계 자율규제라는 이유로 투자자 보호, 분쟁조정 등의 감독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분쟁이 생겼을 때 이들이 금융업체와 투자자 중 누구 편에 서게 될까. 자율 규제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지만 안전 및 환경 관리·소비자 보호 업무까지 업체에 위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업체가 스스로를 강력히 규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위임 업무를 담당하는 협회에는 관료 출신이 낙하산을 타기에도 명분이 그럴싸하다. 감독업무를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게다가 이런 협회는 퇴직공직자 재취업 제한 규정도 적용받지 않으니 이직에 전혀 부담이 없다. 실제로 수많은 감독 겸업 협회에는 거의 예외없이 관료 출신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해운조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업자가 스스로를 감독하는 모순된 시스템을 하루빨리 손보지 않으면 대형사고는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다. 낙하산 인사도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다.
민간에 맡길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반드시 정부가 맡아야 할 일이 따로 있다. 안전·환경·소비자보호 등 업계와의 이해 상충이 큰 분야의 감독업무는 인력·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정부가 직접 담당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인재(人災)이지만 잘못된 시스템이 초래한 재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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