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땀도 때로는 배신한다?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7 16:57

수정 2014.10.25 02:32

[fn스트리트] 땀도 때로는 배신한다?

천재들의 성공 비결을 파헤친 맬컴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2009년)는 국내에서도 40만부 넘게 팔린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이 책의 결론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성공의 열쇠는 재능보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하면 된다'는 걸 누가 모르나.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발명왕 에디슨)' '진정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등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격언이 차고 넘치지만 막연하다. 그래서, 얼마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 책이 주목받은 진짜 이유는 '1만시간의 법칙'에 있다.

글래드웰은 영국 록그룹 비틀스가 세계 최고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무명 시절 독일 함부르크 등의 싸구려 클럽에서 1만시간 넘게 연주했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또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이미 20세 무렵에 1만시간의 연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스의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하루 3시간씩 10년간 노력하면 나도 '대가'가 될 수 있다니 뭔가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 '1만시간의 법칙'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인 재능을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내용이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에 따르면 미시간주립대 잭 햄브릭 교수팀이 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관계를 조사한 88개 논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학술·교육 분야에서 노력한 시간이 실력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악, 스포츠, 게임 분야에서 이 비율은 20~25%였다. 예술, 스포츠 분야보다 공부 분야에서 재능이 더 중요하다니 뜨악하긴 하다.

스포츠 기자 출신인 데이비드 엡스타인도 베스트셀러 '스포츠 유전자'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1만시간 훈련한다고 누구나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될 수는 없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전자"라고 강조했다. 햄브릭은 자신이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고, 조기교육과 성과를 꾸준히 확인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홀로 체스를 연구한 선수보다 다른 사람과 경기를 꾸준히 한 선수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햄브릭의 연구 결과는 허탈감을 주긴 한다. 노력해도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얘기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이 그만큼 복잡다단하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노력과 재능의 상관관계는 심리학계의 영원한 연구 과제다.
앞으로도 갑론을박이 계속될 것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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