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실패 기업인, 재기의 섬 죽도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22 17:05

수정 2014.10.25 00:02

[여의나루] 실패 기업인, 재기의 섬 죽도

1년 전 지인의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된 한려수도의 작은 섬 '죽도(竹島)'에 대해 몇 마디 적어볼까 한다. 400여년 전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을 이끌었던 유지(遺址)인 그곳은 현재, 사업 실패의 아픔을 가진 이들이 재기의 의지를 다지는 '희망의 섬'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한 기업인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폐교 상태의 초등학교 분교를 리모델링해 '재기 중소기업 수련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한 지 이제 3년이 됐다. 수련원의 설립자 역시 과거 두 차례 사업에 실패한 끝에 죽고 싶은 심정에 홀로 죽도를 찾았고 이곳에서 40여일간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처절한 경험을 전수하고자 이 시설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이른바 한때 잘나가던 경영자부터 소규모 자영업자까지, 다양한 계층과 분야에서 일하던 30여명이 4주간 합숙하며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곳의 간단한 일과는 이렇다.
입소하면 외부와의 연락을 일절 허용하지 않으며 식사는 1일 2식으로 제한한다. 각계각층에서 모인 명사들을 통해 정신교육을 진행하고 재창업에 대한 멘토링과 기술적인 강의도 병행된다. 일과가 끝나면 본격적인 자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죽도의 산중턱에 마련된 반 평 남짓한 개인 텐트에서, 밤새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 7시가 돼서야 내려온다. 그곳은 아름다운 석양과 처절한 재기의 몸부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수원의 모든 과정은 1년 세 차례의 공모를 통해 누구에게나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데 중소기업청은 이와 같은 시설과 프로그램의 유용함을 인정해 연 2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고 한다. 필자 또한 의미 있는 재능기부라 생각해 강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고 도착 후 신규 사업과 창업 시 주의할 점과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강의했다.

그곳에서 1박 2일 길지 않은 기간 머물렀지만 이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니 성공적인 재기 창업에 대한 필자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첫째, 재기를 꿈꾸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재무장이다. 사업에 있어 자금 지원이 가장 우선일 듯싶지만 물리적 지원책만으로는 재기 창업자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철저한 자기 성찰을 통한 정신 무장 및 교육은 재창업 시 반드시 선행돼야 할 부분이다. 둘째, 실패한 사람들의 처절했던 경험은 창업 준비생들의 교육에 활용해야 한다. 그들이 설파하는 '실패학'은 더없이 소중한 자원이며 이를 창업 교육 시스템 안에서 체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실패와 재기의 과정에 있어 그들과 우리 사회는 이미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과 다름없다. 사업 실패자의 경험을 하나의 사회적 자본으로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기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공공부문을 통한 각종 지원 제도들이 산재해 있지만 재기 창업에 특화된 지원 제도와 사업을 정리해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창업 10년 후 중소기업 네 개 중 하나만이 살아남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재기 창업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정부와 공공기관의 창업 지원 정책은 유독 첫 창업에만 편중된 면이 있다.
작년부터 재기 창업에 대한 법령과 제도가 정비됐지만 아직 재창업 중소기업을 위한 특화 지원은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정보 공유 '창업-성장-위기-실패-재도전'이라는 기업의 생애 주기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전반적인 시스템을 정비하고 강화하며 이와 함께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업문화의 환기도 병행돼야 한다.
죽도의 산기슭 작은 텐트 안, 바닥을 딛고 다시 한 번 일어나고자 뼈를 깎는 이들에게 우리 모두가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할 것이다.

서병문 단국대 미디어콘텐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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