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부활하라 이순신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30 17:07

수정 2014.10.24 19:51

[데스크칼럼] 부활하라 이순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두 문장이다. 다시 칼의 노래가 울려퍼질 기세다. 30일 전국에서 일제히 개봉한 영화 '명량' 때문이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김훈의 '칼의 노래'나 김탁환의 '불멸' 등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다시 주목받는가 하면, 팩션소설 '이순신의 제국', 역사인문서 '전쟁의 신 이순신' 같은 책들이 출간돼 '이순신 붐'에 일조하고 있다.
영화를 소설로 옮긴 김호경의 '명량'과 홍기문의 첫 한글 번역본을 반영한 '교감완역 난중일기'도 이제 막 서점에 깔렸다.

개봉 전 영화의 흥행 여부를 예측하는 것처럼 섣부른 짓이 없지만, 영화 '명량'의 흥행전선도 그다지 험난할 것 같지는 않다. 이른바 '1000만 영화'는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라는 충무로의 속설을 감안하면 언감생심 1000만 관객을 꿈꿀 순 없지만 '중박' 이상의 스코어는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개봉 당일인 30일 오전 9시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실시간 예매율이 60%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 이순신인가.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의 출현에 열광하는가. 아니, 왜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서있는 그가 벌떡 일어나 현실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가.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없는 어수선한 현실과 헛발질만 해대는 위정자들에 대한 실망을 그 이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끝없는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진 사람들이 이순신 같은 영웅의 부활을 갈망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진도 울돌목(명량해협)이 세월호 사건이 터진 장소(진도 맹골수도)와 지근거리에 있다는 사실도 참 얄궂다.

영화와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들 이회가 아버지 이순신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왜 싸우시는 겁니까?"
젓가락으로 김치 한 가닥을 들던 손이 멈추었다.

"의리(義理)다."
이회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의리라면…, 나라의 장수된 자로서 의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저토록 몰염치한 임금(선조)한테 말입니까."
이순신이 냉엄하게 말을 할수록 아들의 언성은 분수를 모르고 커졌다. 이순신은 그런 아들에게 가르침을 주려 작정한 듯 천천히 말했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라야 하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있다.
"

뜬금없이 '으리(의리)'를 외치는 김보성이 뜬 것이 의리 없는 세상 때문이듯, 사람들이 이순신의 부활을 꿈꾸는 것 역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만날 길 없는 의리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도 불의한 자들과 대적하는 '~맨(Man)'자 돌림의 영웅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들은 이 땅에 발 딛고 있지 않은 '허공 위의 히어로'라는 점에서 이순신과는 다르다.
역사책으로, 대하소설로, TV드라마로, 또 영화로 수도 없이 만난, 그래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를 사람들이 끊임없이 호출하는 이유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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