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 경제는 볼모가 아니다

손호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0 17:11

수정 2014.10.23 22:32

[양승득 칼럼] 경제는 볼모가 아니다

'깜'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인물, 배짱도 그렇고 자질은 빵점이나 다름없어서였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일이나 벼슬 따위는 꿈도 꿔 보지 않은 이유였다. 장난 섞인 질문이라도 받을라 치면 "무슨 나랏일이냐"며 손사래치기 일쑤였다.

그랬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게 평생의 믿음이었다.
논두렁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는 것은 기본이요, 배짱 또한 두둑하지 않으면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믿음이 옳았다고 새삼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여의도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지켜보면서였다. 무엇보다 낯 두꺼워야 정치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맞았음을 절감했다. 곧 들통 날 거짓말도 잡아떼는 것은 물론이요,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약속을 뒤집는 정치인들의 몰염치를 대할 때마다 "쳐다보지도 않길 잘했다"는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정치인들은 번질번질한 대리석 묘지와 같다. 겉은 하얗고 반짝반짝하지만 속은 썩고 있는 시체와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직전 크리스티안 마르티니 그리말디 교황청 전문기자가 한국 매스컴에 전해준 교황의 발언은 놀랍다 못해 충격 그 자체다. 인류를 사랑으로 감싸고, 평화를 염원해 온 교황의 따스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와 너무나 달라서다. 이탈리아 정치인들에게 한 말이라지만 표현 수위와 강도로 치면 회초리, 죽비가 따로 없다. 부끄러운 줄 알라는 천둥 소리다.

하지만 입만 열면 정의, 진실을 외치는 한국 정치인 중 교황의 말에 "말씀이 지나치다"고 불쾌해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2014년의 국회의사당 시계는 사실상 4월 16일에 멈춰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는 동면 상태다. 경제 살리기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법안들이 모조리 의사당에서 잠자고, 여야 관계는 대립각 아니면 아예 외면이다. 지난 5월 이후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100일이 훨씬 넘는 기간에 법안처리 실적은 제로(0)지만 의원들은 110억여원을 세비로 꼬박 챙겨갔다. 입법활동비조로 매달 313만원씩 타낸 돈이 포함된 액수다.

엄연한 직무유기요, 횡포나 다름없는 입법 권력의 국정 발목 잡기다. 뼈 빠지게 일해도 시간당 5580원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근로자가 231만5000명(2014년 3월)이나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가 지난 12일 내놓은 서비스업 활성화 대책은 경제 살리기의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등 과거 정권들이 내놓았던 것을 재탕 삼탕했다는 비난도 있지만 쪼그라드는 나라 경제를 생각하면 안간힘을 써보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카드다. 투자 규모 15조원에 18만명의 고용효과가 예상된다면 "빨리 첫단추라도 끼워보라"고 국회는 정부의 등을 떠밀었어야 옳다. 1997년 11위에 올랐던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순위가 이제 15위권도 위험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걱정했다면 더 그렇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딴 나라 일이다. 세월호법 재협상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법안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며 여야 합의를 뒤집고 버틴 새정치민주연합의 몽니는 경제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무책임의 극치다. 청와대가 19개 민생관련 법안 처리를 애타게 호소하고 최경환 부총리가 시급한 법안으로 30개를 꼽아줘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법만 앞세우며 경제를 볼모로 잡았다. 7·30 재·보궐선거 완패로 나타난 심판의 뜻을 망각한 탓이다. 19일에도 민생 법안은 또 어둠 속으로 처박혔다. 유가족 반대를 이유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법 재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서 온 결과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은 천둥소리 같은 국민의 꾸짖음을 모기 소리로 낮춰 들으며 거짓말, 검은 돈에 길든 의원들을 감싸고 돌아선 안 된다. 오히려 당과 외부세력이 뜯어말리고 욕설을 해도 민생을 걱정하고 법과 씨름하는 정치인들을 응원해야 마땅하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을 수는 없다.
특별법 등 후속 조치도 차질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오천만 국민의 밥줄이 걸린 경제 법안이 더 이상 정치의 볼모가 돼선 안 된다.
경제를 놓아주는 것이 정치도 사는 길이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