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구멍 난 지방재정, 증세 기로에 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0 17:11

수정 2014.10.23 22:32

지방재정이 딜레마에 빠졌다. 곳간은 비었는데 메울 방도는 없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증세다. 지방세정을 관할하는 안전행정부는 주민세·담뱃세를 올리고 카지노에 레저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증세는 없다'는 대선 공약이 깨질까봐 전전긍긍한다. 지난 19일 열린 당·정·청 협의에서 지방세 증세 안건이 '협의'조차 안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지방재정 결손은 무상복지 확대와 부동산 취득세 인하가 주요인이다. 무분별한 무상급식은 지방자치단체 탓이 크다. 하지만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취득세 인하는 지방재정이 국가정책의 희생양이 된 측면이 강하다. 지난 12일 서울시와 구청장협의회가 '복지 디폴트'를 경고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눈덩이처럼 팽창하는 지방재정 구멍은 지방·중앙정부, 정치권의 공동책임이다. 지자체의 낭비벽과 무분별한 무상급식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중앙정부와 정치권도 지방재정을 혹사시켰다는 점에서 잘한 게 없다.

분수령은 작년 8월의 취득세 영구인하 조치다. 취득세는 지자체 지방세 수입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세목이다. 당연히 지자체장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러자 정부는 한 달 뒤 지방·중앙정부 간 재원을 조정해 지방재정을 연간 5조원 확충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5조원이 장밋빛 전망이며 설사 계획대로 걷힌다 해도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지방 살림은 갈수록 나빠졌다. 온갖 생색을 내면서 지난 7월부터 지급을 개시한 기초연금이 결정타다. 지자체장들은 무상보육 국고보조율을 현행 35%에서 40%로 높이고, 기초연금 분담률을 현행 7(중앙)대 3(지방)에서 8대 2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국세인 부가가치세에서 지방 몫으로 떼어주는 지방소비세 비율도 11%에서 15~16%로 높여주길 바란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가 아니다. 중앙정부라고 화수분이 아니다.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돈이 없어 쩔쩔매는 형편이다. 경기부양에 들어갈 돈만 41조원이다. 대통령 공약을 모를 리 없는 안행부가 증세안을 마련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 같은 고육책조차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마치 제 돈인 양 복지 인심을 쓰더니 은근슬쩍 납세자의 지갑을 털려는 심보를 여론이 곱게 볼 리가 없다.

당장 손쉬운 해결책은 지방채 발행이지만 혹독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4년 전 이재명 성남시장은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대로 가면 어디선가 제2, 제3의 모라토리엄이 불쑥 튀어나올지 모른다. 지방정부가 파산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현명한 정부, 용감한 정치인이라면 복지 축소와 증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도저히 복지를 되돌릴 수 없다면 최종 선택지는 증세로 압축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선택의 순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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