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몰락한 공중전화에 대한 ‘의리’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0 17:12

수정 2014.10.23 22:32

[차장칼럼] 몰락한 공중전화에 대한 ‘의리’

요즘 온나라에 '의리' 열풍이 거세다. 배우 김보성이 촉발제가 돼 연일 '의리' 패러디가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궈놓고 있다. 배신과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신선한 반향을 주고 있다.

40대 중년이 '의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80년대 말 홍콩 영화 '영웅본색'이다. 이 영화에서 압권은 주인공 장국영이 총상을 입은 채 공중전화부스에서 출산한 딸의 소식을 전화로 들으며 죽어가는 장면이다. 요즘 같으면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이 연출돼야 맞는 상황.

한국영화 '초록물고기'에서도 주인공 한석규가 보스에게 칼을 맞은 후 공중전화부스에서 형과 마지막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케이블채널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 공중전화 장면은 학창시절의 추억에 젖게 한다. 그저 옛날 영화 얘기나 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엔 공중전화가 영화 속 단골 소품으로 등장할 만큼 중요한 통신도구였다는 사실을 되짚어 보고 싶어서다.

우리나라에 공중전화가 설치된 시기는 지난 1926년이다. 그 후 1994년 29만대로 확대됐다. 당시만 해도 지인에게 전화를 하려면 손에 동전을 한 움큼 쥔 채 공중전화부스를 이리저리 찾아 헤매야 했다. 일명 '삐삐' 호출을 받은 후 공중전화부스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도 허다했다. 통화 중간중간 동전이 소진돼 들려오는 '찰칵' 소리는 마음을 졸이게 했다. '띠띠띠…'라는 통화종료 경고음은 말의 속도를 높이게 했다. 통화 후 금액이 남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본체 위에 올려두는 미덕도 종종 있었지만 앞뒤 사람 간 시비가 붙어 다투는 일도 왕왕 있었다.

이처럼 전 국민의 '메신저' 역할을 하던 공중전화가 휴대폰의 급속한 확산으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 씁쓸하다. 지난 19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현재 7만대가량의 공중전화가 있다. 20년 전에 비해 4분의 1로 감소한 셈. 그나마도 한 달에 10명도 이용하지 않는 공중전화는 9000여대 정도다. 심지어 1명도 찾지 않는 공중전화도 100여대나 된다. 공중전화 기본요금(3분당 70원)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공중전화 몰락을 이대로 지켜만 봐야 할까. 외국의 공중전화 활용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뉴욕은 무료 와이파이 핫스팟으로 활용하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 공중전화를 기부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세월호 사태 이후 전국적 인프라를 갖춘 공중전화를 국가재난안전통신망과 연계해 활용하면 효과적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휴대폰은 먹통이 된 반면 공중전화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중전화부스를 방범·안전용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택배 보관함, 흡연공간 등 다양한 활용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아무리 '이동통신 5000만 시대'라도 애써 구축해놓은 전국 공중전화를 옛날 영화속 소품으로만 남게 하는 것은 국가적 자원낭비다.
무려 90년 가까이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돼준 공중전화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범정부 차원의 공중전화 재활용 방안이 절실하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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