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김우중과 기업가정신

손호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6 16:52

수정 2014.10.23 19:14

[fn스트리트] 김우중과 기업가정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78)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엇갈린다. 외환위기의 후폭풍 속에서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극과 극이다. 김 전 회장을 성원하고 그가 옳았다고 믿는 이들은 청년 기업가에서 출발해 불과 30년 만에 한국 제2의 그룹을 일궈냈던 그의 '세계 경영' 꿈이 사그라진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일각에서는 기획해체설에 무게를 두고 분통을 터뜨린다. 비난도 만만찮다. 겉만 번드르르했지 속은 엉망인 한국 최대의 부실기업 집단을 이끌었을 뿐이라는 혹평에서부터 문어발 확장과 차입 경영으로 나라 경제에 구멍을 냈다는 비판까지 그를 향한 화살은 아직도 곳곳을 날아 다닌다.


이런 김우중 전 회장이 굳게 닫았던 말문을 열었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교수가 펴내고 26일부터 서점가에 깔린 '김우중과의 대화'(부제: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통해서다. 책은 김 전 회장과 저자가 2010년 이후 하노이, 서울 등지에서 20여 차례 만나 나눈 150시간 가량의 대화 내용이 밑바탕이다.

책에서 김 회장은 많은 것을 털어 놓았다. 500만원을 들고 29세의 나이에 시작한 창업 초기의 일화는 물론 북한을 드나들며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만났을 때 오간 이야기,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의 인연 및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상세히 들려주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대우그룹 붕괴 과정에 대한 언급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들과 정반대의 내용이 적지 않고 멀쩡한 그룹을 억지로 무너뜨렸다는 인상을 줄 대목도 심심찮게 나온다. 김대중정부에서 당시 구조조정에 간여했던 이헌재 전 금융위원장 및 강봉균 전 경제수석비서관의 주장과 극명하게 엇갈린다. 사실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지만 세월이 흘렀어도 가슴 속에서 채 삭히지 못한 개인적 울분과 답답함이 진하게 묻어 있다.

외환 위기 후 한국 산업계의 고성장 신화는 싹이 말랐다. 맨주먹 창업으로 스타 기업을 키워내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한 기업가도 제조업에서는 전무하다. 도전, 열정의 아이콘으로 찬사를 받았던 젊은 시절의 김 전 회장을 연상케 할 영 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기업가 정신의 실종이다. 때마침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자료에서도 한국은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기회추구형 창업 비중이 21%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무기력한 나라 경제 꼴을 기업들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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