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여의나루] 과거시험과 음서제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02 18:16

수정 2014.09.02 18:16

[여의나루] 과거시험과 음서제

지난 2007년 참여정부 때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강조한 법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로스쿨 도입이었다. 민생을 위한 제도 도입이라고 여야가 합의해 2009년부터 로스쿨이 설립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법고시 제도는 폐지되는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 소수정예만 뽑는 사법고시 제도로는 소위 '전관예우'로 대표되는 특권의식, 끼리끼리 문화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무한경쟁을 통해 법률서비스의 값은 낮추고 질은 높이는 로스쿨 방식이 더 나은 제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와 사전준비의 숙성기간을 충분히 거치지 않아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변호사 배출 속에 현대판 음서제가 횡행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특히 로스쿨은 고비용(얼마 전 로스쿨이 사법고시 제보다 준비하는 학생의 비용이 2배가 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뿐만 아니라 소위 명문대학 출신의 취업 편중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 입학전형 불투명성 등의 부작용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 뜻이 좋았다 해도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했던 고졸 출신의 똑똑한 대통령 재임 시에 정작 본인과 같은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보통사람들의 상실감만 키운 꼴이 됐다. 외무고시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응시가 가능했던 외무고시2부가 폐지되면서(외무고시는 2014년부터 폐지) 모 장관의 딸이 특채됐다 해서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다. 시중에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음서제가 부활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의 개편을 추진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격적인 개편이 묘한 시류와 맞물려 세인의 입방아거리가 되고 있음은 문제다. 세월호 사고 후 대통령이 국민담화에서 관피아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행정고시 임용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논리적으로 해석하면 관피아(관료 마피아)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고시를 통한 공직 임용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행정고시 선발을 줄이거나 폐지한다고 해서 관피아가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고시를 통해 입신양명을 꿈꾸는 서민 출신 젊은이에게 그 기회를 없애버리는 꼴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가뜩이나 요즘 젊은이들에겐 스펙 쌓기가 최우선시되고 있다는데 경제적 또는 계층적 차이로 인해 소위 스펙이란 게 이미 결정돼버리는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역사적으로 공직임용 제도는 국가발전과 그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시대정신과 흐름을 같이한다면 개방화·다양화·전문화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개편은 출발부터 과정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논란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연구·분석을 통해 충분한 방비와 보완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새로운 제도와 운영에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객관성에 대한 요구가 매우 강하고, 사회 저변에 공정성이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인사와 관련한 부정적 여론은 70%가 넘고 고시 폐지에 대한 반대여론도 50%를 넘는다고 한다. 출발선이 같고 그나마 공정하고 객관적인 경쟁이 바로 고시제도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다만 몇 과목의 시험만으로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므로 보완책은 필요하나 순간적 결정이 아닌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안전장치로 개천에서 용 나는 길은 작게나마 열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역사학자가 고려왕조나 조선왕조가 오랜 기간 존속했던 원동력이 바로 과거시험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와 조선 말 문제 유출, 대리응시 등 과거시험과 관련한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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