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셔터 내리는 은행

손호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02 18:16

수정 2014.09.02 18:16

[fn스트리트] 셔터 내리는 은행

"어휴 말도 마세요. 지금 이 자리를 분양받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얼만지 아십니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대단지 아파트 상가는 은행들이 무조건 들어가고 보는 노른자위였는데…."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상가에 자리잡은 A은행 B지점장은 십수년 전의 일이 꿈만 같다며 요즘 새내기 행원에게는 그때 사정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푸념 그대로였다. 평일 오후에 찾은 은행 내부는 널찍하고 쾌적했지만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고객은 많지 않았다. 은행 직원들이 오히려 더 많아 보이는 듯했다. "딩동, 딩동…." 사방에서 호출 신호음이 울리던 시절이 있기나 했나 잠깐 의문이 들기도 했다.

B지점장의 고백에 비친 속앓이는 A은행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시중은행 모두가 안고 있는 공통의 고민거리다. 거금을 찔러 박고 문을 열었지만 고객은 갈수록 줄고,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렵게 된 적자 점포가 늘면서 생겨난 걱정들이다. 고객이 줄어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등으로 은행 일을 처리하는 문화가 뿌리내리다 보니 굳이 객장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졌다. 자동화기기가 널리 보급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는 현실 또한 텅 빈 객장과 무관치 않다.

적자 점포의 해결책은 하나다. 은행으로선 셔터를 내리거나 이웃 점포와 합쳐서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없어진 은행 점포가 작년 7월 이후 한 해 동안 269개에 달한다는 통계가 금융권에서 2일 나왔다. 9개 시중은행 전체 점포의 5%에 해당한다니 20곳 중 1곳꼴로 문을 닫은 셈이다. 외환위기 직후 5개 은행이 구조조정으로 간판을 내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점포 축소다.

점포 축소는 필연적으로 일자리 감축을 동반한다. 남아도는 일손을 정리해야 하니 고용안정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치다. "창구거래 비중만 따지면 점포와 인력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게 타당하다"는 한 시중은행 임원의 말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예고하는 셈이다. 하지만 인력감축은 단순한 해법이 아니다. 밥줄이 걸린 문제를 넘어 국가 고용정책의 틀에도 영향을 줄 사안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점포·인력 축소는 3일로 예고된 금융노조 총파업의 주요 이슈로도 자리잡은 상태다.

'은행원'은 지금도 우리 사회 최고의 선망직업 중 하나다.
그러나 문 닫는 점포가 늘어나는 현실을 바라보며 이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치 않을 게 분명하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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