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좌초한 열정, 고양 원더스

김신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4 16:48

수정 2014.09.14 16:48

[fn스트리트] 좌초한 열정, 고양 원더스

소셜커머스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의 대주주이자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구단주인 허민(38)은 야구에 미친 괴짜다. 서울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한 뒤 게임업체 네오플을 세워 2005년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로 대박을 터뜨리고 2008년 회사를 3800억원에 넥슨에 매각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기업인이나 구단주보다는 야구선수로 불리기를 원했다.

서울대 시절 야구부에서 활동했고 미국 유학 시절에는 '너클볼의 전설' 필 니크로를 찾아가 너클볼을 배우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독립리그인 캔암리그의 락랜드 볼더스팀에 정식 선수로 등록, 선발투수로 데뷔했다. 그는 데뷔전 패배 후 "불가능의 반대말은 가능이 아니라 도전"이라며 "보다 큰 목표를 향해 계속 도전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난 5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첫 승리를 따냈다.

2011년 9월 고양 원더스를 창단할 때 허 구단주는 "야구단을 하려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현 넥센히어로스) 인수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그리고 매년 30억원 넘는 사비를 구단에 털어넣었다. 순전히 프로야구팀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고양 원더스의 슬로건은 '열정에게 기회를'이다. 실패한 인생들이 재기할 마당을 마련해준다는 취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박수를 보냈다. 특히 SK와이번스를 뛰쳐나온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고양 원더스는 날개를 달았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는 예상을 깨고 승승장구했다. 프로야구 퓨처스(2군)리그에 번외경기 형식으로 참여해 3년간 96승25무61패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지금까지 23명이 프로팀에 입단하는 기적도 일궜다. '선수 사관학교'라는 본래의 목표를 이룬 셈이다. 구단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더 이상 좌절은 없다"며 똘똘 뭉쳐 땀 흘린 결과였다. 그런 고양 원더스가 지난 11일 해체를 전격 결정했다. 허 구단주의 꿈도 좌초됐다. 패자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신화를 지켜보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고양 원더스는 "제도권 밖에 머물면서 미래와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퓨처스리그에 정식 등록을 해주겠다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은 진입장벽 문제다.
국내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3년, 아직도 독립구단이 설 땅을 내주지 않는 야구계 풍토가 개탄스럽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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