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법관과 법치주의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6 17:16

수정 2014.09.16 17:16

법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법관이 안 되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시험 합격 등 능력 얘기는 일단 제쳐 놓자. 성격이 법관에 맞지 않는다 싶기 때문이다. 이 쪽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저 쪽 말을 들으면 그 쪽 말이 더 솔깃하게 들린다. 양쪽 주장 사이에서 명쾌한 판단이 힘들다. 좋게 말해 균형감이지만 실제로는 우유부단이다.
[노동일 칼럼] 법관과 법치주의

당사자가 치열하게 다투는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어주는 일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소심함도 법관직 수행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다른 편은 법관을 비난할 게 틀림없다. 당사자 개인의 불평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정치적 사건 등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에서 공개적인 비난을 받는다면 위장병을 얻고 밤새 뒤척였을 것이다. 하지만 법관의 최고봉인 대법관을 지낸 분도 평생 이런 고민을 안고 있었음을 알고 상당히 안도(?)한 적이 있다.

오래됐지만 박우동 전 대법관의 '판사실에서 법정까지'라는 책에는 법관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형사사건의 경우 진실 발견은 법관에게 많은 고뇌를 준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진실인 쪽과 진실이 아닌 쪽을 저울질하면서 고민할 때가 있다." 아전인수 격이지만 단순히 내 귀가 얇아서 판단이 흔들리는 것만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싶다. 또 법관이 아무리 공정한 판정을 내리더라도 어느 한쪽은 결국 패소하게 돼 있다. 재판에서 진 사건 당사자는 판사를 원망하면서 울분을 토한다. 그래도 그게 재판의 속성이고 법관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사건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서울형사지법 21부가 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판결을 두고 논란이 크다. 정치권의 반응이야 언급할 가치도 없다. 오직 제 논에 물 대기 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 법관인 김동진 판사의 공개 비난은 차원이 다르다.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은 위반했지만 선거운동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판결의 취지다. 선거운동 개념을 좁게 인정한 판결을 법리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검찰은 국정원이 단순히 선거에 영향을 끼친 것을 문제 삼은 게 아니다. 국정원의 행위가 선거개입을 넘어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이다. 선거개입과 선거운동을 구분하지 않은 비판은 성급한 비난이다.

더 본질적으로 김 판사는 재판과정을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자신이 마시는 우물에 침을 뱉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법치주의를 죽이는 지록위마, 승진을 앞둔 사심(私心)판결 운운은 선을 넘은 것이다. 법관의 판결은 항상 진실과 부합하며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박 전 대법관도 법관이 구성하는 사실관계는 객관적인 진실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고 그 재판을 오판(誤判)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하는 재판의 숙명적인 한계다. 그래서 3심제가 있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인 것이다. 전직 대법관은 이런 고백을 남기고 있다. "판결을 선고할 당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뒤 다시 검토할 때에는 그때 왜 좀 더 깊이 검토하고 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기가 한 재판에 한 점 오류가 없었노라고 자신을 가질 수 있으면 오죽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었다.
" 김동진 판사는 자신의 재판과 오늘의 글을 두고 이런 후회를 할까. 아니면 정치적으로 입신양명한 여러 선배들처럼 친정인 법원의 판결을 자신의 입맛에 따라 재단하는 길을 따를까. 판결이든 글이든 이런 후회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법관이 안 되길 잘한 것 같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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