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손호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6 17:16

수정 2014.09.16 17:16

[fn스트리트]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월 나라 왕 구천을 도와 오 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앞장섰던 범려와 한고조 유방의 일등 공신 장량은 살았던 시대가 크게 다른 인물들이다. 당대 최고의 지낭(꾀주머니)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들이지만 섬겼던 군왕도 다르고 싸웠던 상대도 달랐다. 하지만 중국 역사는 두 사람의 말년 행보가 일치했다며 그들의 마지막 선택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功成身退(공성신퇴). 많은 공을 쌓았지만 벼슬이나 재물에 대한 아무 미련 없이 뒤로 물러난 두 사람의 결단과 처신이 명예를 지켜 준 것은 물론 모든 후환까지 막아냈다는 것이다. 역사는 한나라 개국의 또 다른 일등 공신 한신이 우물쭈물 망설이다 토사구팽격으로 유방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을 두 사람과 대비되는 케이스로 올려 놓고 있다.

進退見隱(진퇴현은). 고전은 인생살이에서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과 나타나고 숨을 때를 제대로 가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고 가르친다.
선택을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고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능력을 발휘하고 도가 없으면 조용히 물러나 수신에 힘써야 한다'(天下有道則見 無道修身)는 논어의 구절 역시 이 같은 가르침과 무관치 않다.

우리 역사에도 공성신퇴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들은 적지 않다. 조선 중기의 명재상 류성룡은 임진왜란 극복에 절대적 공을 세우고도 관직에서 물러나겠다며 두 달간 선조에게 사직상소를 연이어 올렸다. 왜란 말기인 1598년 가을, 자신을 모함하는 탄핵상소가 잇따르자 어지러운 세상에서 물러날 때가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벼슬 길에서만 아름다운 퇴장이 중시됐던 것은 물론 아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이덕무는 "호피(虎皮)를 걷어내는 일에 인색하지 말라"고 후학들을 다그쳤다. 호피는 스승의 자리를 뜻하는 상징적인 물건을 말한다. 학식과 덕망을 갖추지 못하면 언제든지 스승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퇴진·사퇴가 뉴스의 단골 용어로 자리 잡았다. 발신지는 KB금융그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다. KB금융은 진흙탕 집안싸움의 후폭풍으로 임영록 지주사 회장이, 새정치연합은 내부 권력다툼과 분열 등의 이유로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벼랑에 섰다.
당사자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 분명하다. 억울한 점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뉴스를 지켜 본 세상 민심은 고전 속의 가르침에 또 한 번 주목했을 것이 분명하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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