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한전부지 입찰 ‘승자의 저주’ 안되려면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6 17:16

수정 2014.09.16 17:16

[차장칼럼] 한전부지 입찰 ‘승자의 저주’ 안되려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부지 입찰결과 발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감정가 3조3000억원이 넘는 한전부지는 삼성과 현대차의 대결구도로 예상되면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최고가 입찰인 데다 단독 입찰은 무효화되기 때문에 입찰 예상 가격은 감정가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 시각이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난 1971년 정유업체인 애틀랜틱 리치필드(ARCO, 아르코)의 연구원 3명이 석유기술저널(journal of petrolium technology)에 쓴 것이 시초다. 600페이지가 넘는 석유기술 저널은 당시 유전이나 광구 시추에 대한 기술과 입찰 정보 등을 담았다. 당시 석유업체들이 장기적 수익을 내려면 유망 시추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이슈였다.

아르코의 연구원들은 1950년 멕시코만 일대 시추 대상지역에 대한 과열경쟁 사례를 13페이지에 걸쳐 분석했다. 대상 지역은 지상이 아닌 바닷가 일대였으므로 당연히 시추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시추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매장량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미국 내무부가 멕시코만 시추부지를 경매에 부치자 과열경쟁이 일어났다. 복잡한 수식까지 도입한 끝에 얻어낸 연구원들의 결론은 이렇다. 불확실성이 커져 과열경쟁이 우려되면 예상치보다 낮은 금액으로 베팅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입찰에서 질 가능성도 커지지만 손해볼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용어는 1970년대였지만 승자의 저주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인도의 GIRO 컨설팅 그룹 자료에 따르면 승자가 저주를 받은 최초의 사례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93년 로마 황제 페르티낙스의 근위대는 황제를 살해한 후 황제직을 최고가 경매에 부쳤다. 입찰 초반엔 황제직이 2만 세스테르티우스였으나 경쟁적으로 금액이 올라가서 디두스 율리아누스라는 귀족이 2만5000 세스테르티우스를 불러 황제직을 따게 된다. 이 금액은 당시 근위대 1만명에 대한 5년치 급여에 해당했다. 현재 시가로는 10억달러, 1조원 가까이 되는 금액이었다. 결과적으로 율리아누스는 이 약속을 이행할 수 없었고, 다른 장군에게 황제직을 내놓게 된다. 주요 자산을 경쟁 입찰에 부치는 사례가 일반화되면서 승자가 저주를 입은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경제계에서 이 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승자의 저주 이론은 선수 몸값을 흥정해야 하는 스포츠 업계, 인수합병(M&A)이 이루어지는 재계 등에서 폭넓게 쓰인다.

한전 부지를 두고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는 것은 국내 최대 대기업그룹 간 대결이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사옥 부지로 찜해두고 대결 불사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삼성도 이미 잔뜩 눈독을 들인 터다. 겉으론 조용하지만 속으론 주판알을 튕기는 눈치가 역력하다. 국내 최대 부자그룹 간 대결. 이 정도면 과열경쟁 관측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것이다. 이미 총 개발비용이 10조원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땅을 확보한 이후에도 서울시와 개발계획을 조율하는 일이 남았다.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부담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개발비용을 합리적으로 아낄 수 있는 복안 마련이 절실하다.

ksh@fnnews.com 김성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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