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성호칼럼] 카페에서 만난 두 영웅/김성호 주필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4.06 22:19

수정 2010.04.06 22:19

세계 정보기술(IT)대전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들은 각 진영 최고사령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주시한다. 2010년 3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러 앨토의 노변 카페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구글의 에릿 슈밋이 만나는 장면이 포착됐다. 팰러 앨토는 인근 새너제이와 더불어 서로 실리콘밸리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조그만 도시다.

두 최고 사령관이 은밀하게가 아니고 공개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염탐’하기 위해 기자들은 망원렌스와 음향기기를 동원했다. 그러나 워낙 거리가 멀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 결과 장님 코끼리 더듬기 식의 보도문이 작성됐다.
미국 포브스지와 한국 파이낸셜뉴스지의 기사를 종합하면 이런 대화가 오간 것 같다.

“에릭, 자네는 현재 세계의 IT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최고경영자(CEO)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스티브, 우리가 어찌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구글의 신통력을 발휘해보면 3월 30일쯤 뉴욕증시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무려 2471억에 이를 걸세. 자네(애플)의 시가총액 1742억달러, 나(구글)의 시가총액 1681억달러하고는 게임이 안되지. 빌이야말로 천재적 두뇌를 가진….”

“잠깐, 빌은 빼놓고 얘기하세. 그는 1995년 이전에 이미 회장이 된 옛날 인물이야.” “왜 1995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데 거기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 “변화의 속도가 ‘모든 것’인 2010년에 서서 보면 15년 전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아닌가.” “마침 자네가 한국 속담을 인용하니까 말이네만 삼성전자의 윤종용은 어떤가.” “그는 삼성전자가 숙적 소니를 물리치고 세계 최대의 전자 메이커로 등극하는데 초석을 놓은 인물이지. 그러나 2008년에 고문으로 물러앉았어.”

“그렇다면 아직도 활동하는 인물로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나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제프리 베조스,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기린아 이베이의 멕 휘트먼, 하다못해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어떤가.” “흥, 조무래기들이지. 특히 주커버그는 젖 냄새 나는 애야. 애플과 구글의 ‘물건들’이 세상을 휩쓸면 이들은 추풍낙엽과 같아. 시대의 영웅은 용과 같아. 자유자재로 몸을 숨기고 한 번 나타났다하면 천하의 안개를 다 집어 삼키지. 그런 점에서 지금 천하를 호령할 최고경영자는 나 스티브 잡스와 자네 에릭 슈밋 둘뿐일세.”

이 말에 깜작 놀란 에릭 슈밋은 그만 컵을 떨어뜨렸다. 아, 이 친구가 나의 속셈을 알아차린 게 아닐까. 검색 엔진의 달인 구글이 스마트폰 시장까지 석권하면 지식과 정보의 제조·유통을 모두 독점할 수 있다는 나의 원대한 구상을 말이다. 그 때 스티브 잡스가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로 꼬고 앉았다. 긴장할 때의 버릇 그대로다. 그리곤 매서운 질문을 쏟아냈다.

“21세기 권력은 지식과 정보를 장악한 자에게 돌아간다네. 검열을 고집하는 중국 정부와 맞대결을 한 게 바로 자네의 구글 엔진 아닌가. 지식의 원천은 구글이 장악하고 가공 유통은 애플의 걸작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맡기면 되지 왜 자네가 넥서스원으로 모바일 시장에 뛰어 드는가. 나와 일전불사하겠는 것이지?” “그런 소리 말게. 자네도 온라인 광고시장 1위인 구글을 무너뜨리려고 광고회사 인수·합병에 뛰어들지 않았나.”

“자네가 그렇게 변명만 한다면 내 발명품의 구글 애플리케이션을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엔진으로 바꾸겠어. 며칠 내로 21세기의 신기(神器) 아이패드를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룰거야.” “좋아. 자네가 그렇게 뻣뻣하게 나오면 구글은 아이패드의 운영 체제를 지원하지 않겠네. 구글이 빠진 아이패드는 반신불수가 될 걸.” “이런 배신자! 나쁜 짓을 하지 말게” “뭐 이런 독불장군! 다르게 생각하시게.”

구경꾼이 몰려들자 스티브 잡스는 “좀 더 조용한 데로 가서 이야기하자”며 일어섰다.
자리를 옮긴 55세 두 동갑내기가 언쟁을 이어갔는지 화해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후일 역사가들은 세계 IT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두 사람이 담판을 벌인 이곳을 가리켜 “역사는 카페에서 이루어진다”고 쓸 것이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도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와 유비의 ‘영웅론’에만 관심을 쏟을 게 아니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