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대한민국 국격의 허상/이성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1.10 18:29

수정 2010.11.10 18:29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세계 석학들과의 교류를 통한 선진 학문의 제고를 위해 해외 저명학자 초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주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학을 방문한 학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남가주대학교(USC)에서 교통 기간망 구축과 이에 대한 파급 효과를 전공하는 무어 교수였다. 1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무어 교수가 체재 일정 중 가장 감동받았던 것은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 구축과 이의 운영에 대한 것이었다. 택시와 버스, 그리고 지하철을 직접 이용해보고 난 이후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는 서울의 대중교통망 구축과 운영에 대한 그의 감흥은 확실히 남달랐던지 서울시 교통체계에 대한 세밀한 부분을 알고 싶어했다. 다행히 무어 교수의 지도학생이었던 분들 중 한 분이 서울시 대중교통개편 당시 주요 역할을 담당한 경험이 있어 이 분을 통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떠나면서 무어 교수가 언급한 내용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선진국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답습하는 후발 선진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5년 전 방문 시에는 학문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 모두에서 한국의 학자들에게 뭔가 전달해줄 것이 있었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모든 측면에서 준 것보다 받은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유익한 방문이었다’라는 것이 무어 교수의 반응이었다. 무어 교수와의 다수의 접촉 경험으로 인해 이러한 언급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님을 잘 안다.

무어 교수의 소회가 한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일회성 감흥이 아님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다양한 외부의 시각으로 잘 드러난다. ‘빈곤의 종말’이라는 저술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금융위기 이후 대한민국이 제시했던 다양한 처방들과 이에 따른 회복이 세계 주요 국가들 중 가장 지혜로웠다고 언급한다. 그는 특히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적절한 재정 및 통화 정책, 그리고 미래성장의 기치로 내세운 녹색성장을 위한 정책방향 등이 대한민국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물론 미래 국가성장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일등공신으로 인정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프리미어 포럼으로 지정된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제하는 대한민국의 위상 역시 선진 국격을 체감하게 한다. 직·간접적 경제가치가 25조원에 달한다는 G20 정상회의를 의장국의 지위로 유치한 정부의 노력은 선진국 수준의 국격을 창안하겠다는 MB정부의 과업으로 인정할 만하다. G20 정상회의에 앞서 특집을 마련한 미국의 주요 미디어인 월스트리트저널지와 타임지의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선진국 수준의 국격에 맞는 자긍심을 일컫기에 충분하다. 이들 미디어는 세계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더 이상 ‘기적’이라는 수식어로 치부하는 단계를 벗어나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국가개발 방향을 위한 표석, 그리고 선진국 경제정책방향 설정을 위한 주요 사례라고까지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후진국 수준의 위상에서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은 분야도 있다. 한화와 태광, 그리고 C&그룹으로 대변되는 재벌들의 전근대적 행태에 대한 의혹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후진국 수준 경제 주체의 일원으로서 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구태를 재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현저히 훼손하는 일이다. 비자금, 분식회계, 특혜대출, 편법 및 탈법 증여 및 상속 등과 같은 개발독재 시대에나 들을 만한 경제범죄 용어들의 난무는 G20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격 훼손의 일등 공신은 여의도로 대표되는 정치 분야다.
법을 제정하는 집단이 스스로 법을 어기는 수많은 행위는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은 참담한 대한민국 국격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시급한 민생현안은 시기를 넘겨도 국회의원의 복지를 위한 연금법 제정에는 전체의 80%에 달하는 의원들이 찬성하고 있다니 이들의 인격과 대한민국의 국격은 너무나 멀어 보인다.
일부 재벌과 정치권의 전근대성 제거가 선진 대한민국 국격 진입을 위한 최우선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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