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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그리스, 드라크마로 복귀?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6.15 09:56

수정 2011.06.15 09:51

유로에 흡수되기 전 그리스의 드라크마(Drachma)는 세계 최고(最古)의 통화로 통했다. 드라크마는 한때 그리스가 지배하던 지중해 세계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성경에도 예수가 드라크마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5장).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그리스는 2001년 드라크마 대신 유로화를 택했다. 선조들의 때가 묻은 드라크마를 버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멋쟁이 유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유로 가치는 미국 달러와 맞먹었다.
언제 그리스가 그런 통화를 가져보겠는가. 또 유로만 있으면 유럽 대륙 어디를 가도 통한다니 이 얼마나 편한가.

그로부터 10년 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것이란 소문이 꼬리를 잇고 있다. 5월 초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리스가 유로화 포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그리스 출신 EU 집행위원은 “우리는 혹독한 희생이 필요한 긴축을 채권자들과 합의하든지 아니면 드라크마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서 유명해진 누리엘 루비니 교수(뉴욕대)는 유럽이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아예 각국이 유로를 포기하고 예전 통화로 복귀할 것을 권했다. 달러에 맞설 유로제국을 꿈꾸던 EU로선 수치스런 제안이다.

유로만 버리면 그리스 경제가 벌떡 일어설까. 분명 좋은 건 있다. 통화주권을 가져오면 눈치 안 보고 드라크마를 급격히 평가절하할 수 있다. 평가절하는 수출을 늘리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통화 절하는 그만큼 대외채무의 급증을 초래한다. 또한 유로존 탈퇴는 스스로 보호막을 벗어던지는 무모한 결정이 될 수 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종전 B에서 CCC로 3단계나 낮췄다.
이제 여차하면 디폴트다. 중요한 것은 유로냐 드라크마냐가 아닌 것 같다.
기원전 5세기에 스파르타의 최정예 전사 300명은 페르시아 100만 대군에 맞섰다. 지금 그리스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빚 구덩이에서 벗어나려는, 300인과 같은 강철 의지가 아닐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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