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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매몰비용, 박원순 발목 잡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2.01 09:54

수정 2012.02.01 09:54

한번 착수한 사업은 되돌리기 어렵다. 10층짜리 건물이 5층까지 올라가 있다면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 공사를 마무리지으려 한다. 중단하면 그동안 쏟아부은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1970년대 유럽이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Concorde)를 제작할 때 그랬다. 초음속 여객기는 연료소비가 많고 소음이 큰 데다 승객도 많이 태울 수 없다는 단점이 드러났다. 유럽에 맞서 별도의 초음속기 제작을 서둘던 미국은 과감히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유럽은 그동안 들인 돈이 아까워 계속 돈을 쏟아부었다. 판단 착오였다. 콩코드는 운행 27년만인 지난 2003년 퇴역했다. 사업을 중도 포기할 때 회수할 수 없는 돈, 즉 매몰비용이 작을 때 손을 턴 미국이 현명했다.

세종시 사업을 접자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매몰비용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땅 파고 건물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어쩌란 말이냐는 항변이었다. 4대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일 때도 찬성론자들은 매몰비용을 거론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시 예산을 짤 때 오세훈표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어쩔 수 없이 재정을 배분했다. 공사를 중단할 경우 묻히는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도 매몰비용이 문제다. 이미 추진위원회·조합들은 감정평가비·설계용역비 등을 지불했다. 조합원 총회를 치르면서 쓴 인건비·식대 등도 꽤 된다. 이들이 사업을 접는 대가로 치러야 할 매몰비용을 다 합치면 최소한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민간 개발업자와 지자체가 벌인 사업에 온 국민의 혈세인 세금을 지원할 수 없다며 반대한다. 상식적으로 국토해양부의 주장이 맞다. 더구나 서울은 지자체 중 가장 부자다. 다른 지자체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결국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의 성패는 돈에 달려 있다.
매몰비용 보전비가 넉넉하면 사업을 접는 구역이 나오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 자체가 진퇴양난에 빠질지도 모른다. 약자 위주의 주택정책을 펴겠다는 박 시장의 선의는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선의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혹시 시민운동가 출신의 '순진한' 박 시장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아닐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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