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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아베는 ‘천황파’ 기시의 후예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11.22 16:55

수정 2012.11.22 16:55

기시 노부스케는 1932년 일본이 만주에 세운 괴뢰국의 최고위급 관료였다.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호언할 정도였다. 그때 기시는 관동군 헌병대사령관 출신인 도조 히데키 장군과 가깝게 지냈다. 도조가 전시내각의 총리가 되자 기시는 상공대신에 임명됐다.

전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은 도조를 A급 전범으로 처형했다. 기시는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기시 역시 A급 전범으로 3년간 수감됐으나 소련과 냉전을 펼치면서 아시아의 공산화 도미노에 전전긍긍하던 미국은 기시를 따로 쓸 데가 있었다. 1955년 기시의 민주당은 요시다 시게루가 이끌던 자유당과 합당했다. 두 보수·반공 정당의 합당으로 자유민주당(LDP·Liberal Democratic Party)이 탄생한다.

자민당 출신 첫 총리는 요시다였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게 기시다. 기시는 총리 재직(1957~1960년) 중 미·일 안보협정을 바탕으로 일본 재건에 매진했다. 중국 침략의 원흉,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이 일본의 부흥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4년 뒤 총리직은 사토 에이사쿠(재임 1964~1972년)에게 넘어간다. 원래 기시와 사토는 한 형제다. 다만 형인 기시가 어릴 때 기시 가문으로 양자로 들어가면서 이름을 사토 노부스케에서 기시 노부스케로 바꾸었을 뿐이다.

기시는 바로 현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다. 자연히 사토는 아베에게 작은 외할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는가. 외손자 역시 정치명가의 후예로 손색이 없었다. 아베는 지난 2006년에 전후 최연소(당시 52세) 총리로 취임한다. 비록 각료들의 잇단 스캔들과 본인의 건강 악화로 1년밖에 재임하지 못했으나 그는 꽤 많은 어록을 남겼다. 위안부 강제연행을 공개적으로 부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1993년)를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지난 9월 총재로 컴백한 아베가 극우 발언을 마구 쏟아내도 사실 놀랄 건 없다. 그의 몸속엔 '천황파' 기시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기시가 만주국에서 맹활약할 때 유럽에선 제3제국을 세운 히틀러가 독일인들을 광기로 몰아갔다. 그 배경엔 대공황이 있었다.
지금 세계 경제는 금융·재정위기로 뒤죽박죽이다. 일본은 20년째 디플레이션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내달 16일 총선에서 예상대로 자민당이 이기면 아베가 두 번째 총리직을 맡는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염려하는 게 나만의 과민반응일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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