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은 도조를 A급 전범으로 처형했다. 기시는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기시 역시 A급 전범으로 3년간 수감됐으나 소련과 냉전을 펼치면서 아시아의 공산화 도미노에 전전긍긍하던 미국은 기시를 따로 쓸 데가 있었다. 1955년 기시의 민주당은 요시다 시게루가 이끌던 자유당과 합당했다. 두 보수·반공 정당의 합당으로 자유민주당(LDP·Liberal Democratic Party)이 탄생한다.
자민당 출신 첫 총리는 요시다였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게 기시다. 기시는 총리 재직(1957~1960년) 중 미·일 안보협정을 바탕으로 일본 재건에 매진했다. 중국 침략의 원흉,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이 일본의 부흥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4년 뒤 총리직은 사토 에이사쿠(재임 1964~1972년)에게 넘어간다. 원래 기시와 사토는 한 형제다. 다만 형인 기시가 어릴 때 기시 가문으로 양자로 들어가면서 이름을 사토 노부스케에서 기시 노부스케로 바꾸었을 뿐이다.
기시는 바로 현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다. 자연히 사토는 아베에게 작은 외할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는가. 외손자 역시 정치명가의 후예로 손색이 없었다. 아베는 지난 2006년에 전후 최연소(당시 52세) 총리로 취임한다. 비록 각료들의 잇단 스캔들과 본인의 건강 악화로 1년밖에 재임하지 못했으나 그는 꽤 많은 어록을 남겼다. 위안부 강제연행을 공개적으로 부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1993년)를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지난 9월 총재로 컴백한 아베가 극우 발언을 마구 쏟아내도 사실 놀랄 건 없다. 그의 몸속엔 '천황파' 기시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기시가 만주국에서 맹활약할 때 유럽에선 제3제국을 세운 히틀러가 독일인들을 광기로 몰아갔다. 그 배경엔 대공황이 있었다. 지금 세계 경제는 금융·재정위기로 뒤죽박죽이다. 일본은 20년째 디플레이션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내달 16일 총선에서 예상대로 자민당이 이기면 아베가 두 번째 총리직을 맡는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염려하는 게 나만의 과민반응일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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