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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Global Focus] TPP, 방관할 때 아니다/fn이코노미스트

김신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3.20 16:51

수정 2013.03.20 16:51

[김정수의 Global Focus] TPP, 방관할 때 아니다/fn이코노미스트

지난 1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작년 말 집권 후부터 나라 안팎으로 물밑에서 끈질기게 설득작업을 벌여 참여에 부정적이던 여론을 지지(70% 이상) 쪽으로 돌려놓은 결과다. 일본이 TPP에 참여하면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버금가는 경제통합체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등장하게 된다. TPP에 참여하는 일본의 바람이 무엇인지, 한국의 TPP에 관한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김정수의 Global Focus] TPP, 방관할 때 아니다/fn이코노미스트

■일본의 바람 1:성장경제로의 돌파구 마련

일본이 참여함으로써 TPP는 사실상 미국과 일본의 쌍무간 자유무역협정(FTA)에 해당하게 된다. 일본의 TPP 참여는 이미 '아베노믹스' 3대 정책(경기부양의 재정정책, 양적완화의 통화정책, 신성장전략) 중 성장전략의 중심적 정책과제로 자리매김돼 있었다.
일본은 TPP에 참여해 여타 11개 참여국, 특히 미국과 FTA를 맺음으로써 투자와 성장 그리고 고용 확충을 촉발시켜 '잃어버린 20년' 불황에서 벗어나고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내각의 계산에 따르면 일본이 TPP에 참여하면 농업 부문 등 취약 부문의 생산이 3조엔 정도 줄어들더라도 투자와 소비 그리고 수출이 크게 늘어나 나라 전체로는 국내총생산(GDP)이 3조2000억엔(0.66%) 늘어나게 된다.

■일본의 바람 2:환태평양의 리더로 복귀

TPP는 경제 규모로 세계 1위와 3위, 교역 규모로 세계 2위와 3위 무역국이 하나로 통합되는 첫걸음에 해당한다. 일본의 참여로 미국이 홀로 이끌어온 TPP 경제권이 미국과 일본 투톱 체제의 아·태경제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TPP는 아·태 지역의 미래 번영을 약속하는 큰 틀이다. 미국과 새로운 경제권을 만들 것이다"라는 말로 TPP 참여의 최대 목적을 내비쳤다. TPP를 통해 환태평양 경제권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글로벌 교역규범과 질서에 일본이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20년 넘게 고개 숙여온 늙어가는 아시아 선진국을 제 목소리 내는 활기찬 아·태선진국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TPP 참여 찬성:'경제적, 지정학적 입지가 강화된다'

TPP에 관한 한국의 입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학자들의 연구가 있긴 했으나 정부는 TPP 참여 여부에 관해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한국이 TPP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짚어보자. 첫째는 TPP 참여가 새로운 시장을 확보케 해 성장과 고용 창출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한 연구는 TPP 가입이 GDP를 1.44% 늘리고 국민후생이 77억달러 증가한다는 추계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주장에 대해 기존 TPP 회원국 대부분과 한국이 이미 FTA를 맺고 있거나 협상 중이어서 TPP 참여가 추가로 가져다 줄 시장 확대의 실익이 없다는 반론이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참여하는 TPP는 한·일 간 FTA의 간접적 타결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등 TPP 회원국 중 한국과 쌍무 간 FTA 협의가 있는 나머지 4개 나라와의 FTA도 덤으로 타결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시장 확대의 실익이 크므로 TPP에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TPP 협상으로 구축될 글로벌 교역규범과 질서에 한국 등 동북아 경제의 입장과 여건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참여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반해 협상에 참여할 시기를 이미 놓쳤다고 보는 견해가 있긴 하다. TPP는 2010년 3월 이후 16차에 걸쳐 협상을 벌여왔고 올해 5월과 9월 협상을 거쳐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까지는 타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협상의 큰 틀, 협상의 주요 목표, 특히 교역규범의 제정 방향 등이 다 정해져 있고, 따라서 이 시점에 한국이 참여한들 TPP의 교역규범에 한국의 입장을 반영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당장 협상에 참여하려 해도 12개 회원국으로부터 참여를 인정받는 데 소요되는 시일을 감안하면 이미 기회가 사라진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비관론에 대한 반론은 이렇다. 참여할 수 있는 시일이 촉박하다면 그것은 참여를 서둘러야 할 이유지, 참여를 포기할 이유는 아니다. 더구나 TPP의 합의가 전체의 틀과 방향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일본의 참여라는 새로운 변수 때문에 연내 타결 가능성이 낮아진 점 등을 감안하면 한국이 규범 제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에, 지금이라도 TPP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 반대:'실익도 없이 중국을 토라지게 한다'

TPP 참여에 반대하는 첫째 주장은 TPP가 실익은 없이 농업 등 취약 부문을 더욱 피폐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TPP 참여로 인한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논거도 무시할 수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한국의 민감 부문에 대한 수입 확대 압력은 기존의 FTA 수준을 능가할 정도까지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98%의 자유화율을 보이는 한·미 FTA의 개방 수준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TPP 12 회원국, 더구나 그중에는 한국과 민감 부문이 일치하는 일본이 포함된 TPP 회원국 간 시장개방의 강도는 기껏해야 95% 수준일 것이다.

TPP 참여에 대한 두 번째 반대, 한국과 일본의 TPP 참여가 아세안+아·태 6개국 간의 역내포괄적경제협정(RCEP), 한·중·일 FTA 등 한국이 추진해온 자유무역협상의 김을 빼 이들 협상의 타결을 지연시킨다는 것이다. 반대로 TPP의 확대개편이 여타 '경쟁' 자유무역협정을 더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동시에 추진하는 대서양 지역의 TTIP와 아·태 지역의 TPP가 상호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 일본의 TPP 참여에 한·미 FTA가 촉진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 등이 그 예다. 또 한국의 TPP 참여가 RCEP나 한·중·일 FTA 협상을 한국에 유리하도록 신속히 타결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TPP 참여가 야기할 수 있는 가장 큰 골칫거리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파급효과다. TPP에 일본과 한국이 참여하게 되면, 그것이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중국의 생각이 더욱 굳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한국으로선 동북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절실한데 TPP 참여로 한·중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TPP에 대한 중국의 그런 경계심은 한·중 FTA, 한·중·일 FTA 등 중국이 참여하는 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을 가속화함으로써 해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중국으로 하여금 RCEP든 한·중·일 FTA든 TPP에 필적할 만한 경제통합 체제의 구축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한국이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TPP 참여는 한국의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새 정부가 정부운용에 장악력을 갖출 때까지 입장 밝히기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TPP에 참여할지 말지, 참여하지 않는 경우 대안이 무엇인지, 하루속히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할 때다.


■김정수의 Global Focus는 필자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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