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칼럼] 악플,정치적 이해를 넘어서/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08 17:04

수정 2014.11.05 11:46

‘깊은 상흔(傷痕)을 남기다.’ 긴 글이건 짧은 글이건 일단 당사자가 읽는 순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친다. 만일 그것이 아무 근거 없는 공격성이나 음해성 성격의 글일 경우 그 깊은 정신적 외상은 오래 계속된다. 악의성 댓글에 대한 규제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서 필자는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부분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사회는 다수의 폭정으로부터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그런 소수의 보호를 위한 입법의 역사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니다.

여성들에 대한 참정권, 노동자에 대한 보호 입법, 신체 부자유 그룹에 대한 보호 입법 등은 문명사회가 사회적 현안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왔음을 보여준다. 인터넷을 이용한 악성 댓글이나 허위 사실의 유포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현안 과제로 등장하게 됐다. 새로운 과제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논쟁을 거쳐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충분히 멋진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연애인들만이 아니라 일단 공적인 성격을 지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는 발가벗은 상태로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언제든지 공격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문제는 아무런 근거 없는 비난이나 비판 특히 인격 모독적인 그런 공격이 가해질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허위 정보는 순식간에 타인에게 전파되고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진실로 자리를 잡는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분들은 ‘그러면 읽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읽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읽지 않는다고 이미 가상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정보가 없어질 수 없지 않은가. 공적 인물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이 증권가 지라시나 악성 댓글들 때문에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야’라고 수군거리는 수모를 겪는 경우도 자주 있다. 사실이 아닌데도 다른 사람들이 ‘신문에 났더라’는 식으로 ‘인터넷에 올랐더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일일이 사실이 아님을 해명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 상의 악성 댓글이나 허위 정보 유포는 인류가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다수의 폭정이나 공격으로부터 소수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악성 댓글이나 허위 정보가 한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정신적 외상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어떤 경우에는 폭력의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남자들은 소주 한 잔 마시면서 ‘뭐 그럴 수 있지. 유명세라고 치지’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냥 남들의 문제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소수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소수에 이 글을 읽는 사람 자신도 언제든지 그런 대상이 포함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의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선플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런 운동들이 없을 때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익명성이란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뜻한다. 인간이란 본래 공격성을 갖고 있다. 특히 익명성 하에서는 필요 이상의 공격성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유인이 제공된다.

게다가 이런 익명성이 다수로 뭉치게 되면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향해 엄청난 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가진 이런 점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냥 권유하는 차원에서 그쳐선 안 된다.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서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하며 그런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들 스스로 ‘패트롤’ 기능을 강화하여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악성 댓글 문제가 개인에 대한 공격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얼마든지 국가의 안보나 외교 관계에서도 악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선린외교 관계에 있는 국가 사이에 악플을 이용해 조직적인 이간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표현의 자유는 자기 책임의 원칙과 함께 할 때 정당하다.
정치적 이해를 넘어서 이 사회의 장래를 위해 깊은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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