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김동률 KDI 연구위원

김한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13 20:53

수정 2014.11.05 11:22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인 이유는 가장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등으로 유명한 체코 출신의 감독 밀로스 포먼이 한 말이다. 1996년 밀로스 포먼이 영화 ‘래리 플린트’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던진 이 한 마디는 정작 수상영화보다 더 유명해졌다.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 때 곧잘 등장하는 영화가 바로 래리 플린트다. 포먼 감독에 올리버 스톤이 제작한 영화는 래리 플린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래리 플린트는 누드사진에 어울리지도 않는 난해한 글을 싣는다며 뜬금없이 경쟁지인 ‘플레이보이’의 편집을 공격하면서 스스로는 민망할 정도의 노골적인 막가파 포르노 잡지 ‘허슬러’를 만들어 낸다.
결국 외설죄와 명예훼손죄로 기소된다.

그러나 그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의해 승리한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연방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두고 지구의 반 바퀴쯤 멀리 떨어진 미국과 우리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나라다. 래리 플린트가 법원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설사 포르노라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인정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놈 촘스키의 절대주의 자유이론과도 부합되는 것으로 어떤 가치나 전제보다 우선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최진실 죽음을 계기로 포털 등의 댓글을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포털 댓글에 대한 법적 규제에 찬성하지 않으면 최씨가 겪은 고통을 방조하는 무책임한 사람쯤으로 매도된다. “최씨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도 사이버 악플을 옹호하는 사람은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직접 당해 봐야 한다”는 여당 대변인의 논평은 많은 이의 설득을 얻고 있다.

맞는 지적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직접 당해 봐서 나는 안다. 나는 수년 전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당시 인기 절정의 사극인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웃 나라 일본의 최고 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나치게 정신병자로 희화화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방송직후 집으로, 연구실로 익명의 욕설 전화는 물론이고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는 나의 발언을 비난하는 엄청난 악플로 도배질 당하다시피 했다. 그 해 여름 나는 숨쉬기조차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최진실법’이라는 법적 규제법안을 추진하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 ‘최진실법’이라는 규제법안이 옭아맬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란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로 불릴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유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백히 적시하고 있다. 맞는 지적이다.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악플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손쉽게 법적 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 개개인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일찍이 밀턴이 주장한 ‘사상의 자유로운 공개시장(free marketplace of ideas)’을 통해 자율적으로 걸러져야지 권력기관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규제하고 나서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비록 인기 배우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계기로 표현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려는 시도는 지나치게 근시안적이다.
조금 편하자고 만든 규제라는 괴물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를 숨막히게 옭아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차분하게 깨달아야 한다. 한 명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면 결국은 모든 자유가 억압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거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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