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방통위 조직부터 손봐야/임정효 정보미디어 부장

임정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13 18:10

수정 2014.11.05 11:24



“방송통신위원회에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무처 조직을 두고 정무직 사무총장을 두라.”

최근 국회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변재일 의원이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 한 말이다. 방통위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웬 엉뚱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실은 심각한 이야기다.

방통위는 이름 그대로 위원회 조직이다. 이 때문에 사소한 의사결정조차 모조리 위원회 전체회의에 올려 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방통위 직원들은 위원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건건이 1, 2, 3안을 만들고 각안의 장단점과 문제점을 요약해 위원들에게 보고하는 게 임무다.

그런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무런 권한도 없이 허구한 날 “결정해 주십시오”하고 1, 2, 3안만 죽어라 만들어 댄다는 게 옛 정보통신부 출신 공무원들로선 영 김빠지는 일이다. 무엇보다 의사 결정 속도가 느려 터졌다. 방송통신기술과 경영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한국의 방통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변 의원이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별도 시스템을 만들 것을 주문한 말에 백번 공감이 간다.

말이 나온 김에 현 방통위 기능과 조직의 문제점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지난 9월 초에 있었던 대통령 업무보고 때 방통위는 난감한 일을 겪었다. 당시 ‘일자리 창출’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 드라이브를 걸었던 청와대가 방통위에 일자리 창출을 요구한 것. 그러나 산업진흥 기능을 지식경제부, 문화관광체육부 등으로 넘기고 규제 기능만 달랑 남은 방통위가 일자리 창출 기능이 있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방통위엔 산업을 지원할 예산도 없다. 할 수 없이 방통위는 핵심사안인 인터넷 TV(IP TV)와 와이브로를 내세워 이들 산업이 순조롭게 성장할 경우 창출될 가능성이 있는 일자릿수를 전망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런 형편에 정보기술(IT) 산업 진흥정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방송통신산업을 놓고 좌충우돌하면서 죽어나고 있는 건 IT 업계다. IT 업계에 “한국에 IT 정책이 있긴 한 거냐”는 자조적인 말이 퍼져 있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정치권은 한술 더 뜬다. IT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회의원이 극소수이다 보니 관심은 온통 방송에 쏠려 있는 형편이다. 단적으로 통신요금 정책만 해도 그렇다. 옛 정통부는 요금인하를 요구할 땐 산업진흥을 위한 당근도 함께 제공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내리고 또 내리라’는 요구뿐이다.

이 결과는 한국의 IT 산업 경쟁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선 인프라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 법. 최근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은 “한국의 IT 경쟁력이 2007년 3위에서 8위로 5단계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원인은 IT 인프라 부문과 IT 산업개발 지원 부문의 경쟁력 저하라고 한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은지 요즘 방통위는 IT 산업 진흥기능을 되찾아 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업무 중복으로 갈등관계에 있는 지경부, 문화부,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업무 협조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옛 정통부 업무를 나눠가진 문화부, 지경부, 행정안전기획부가 참여하는 4개 부처 장관급 협의체(IT 컨트롤타워)도 추진 중이다. 최 위원장은 여기서 좌장 역할을 맡을 작정이다. 이뿐 아니다. 힘을 쓰려면 예산이 필요하기 마련.

방통위는 현재 가지고 있는 방송발전기금을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확대·개편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연초 정통부를 찢어발기면서 지경부, 문화부, 행안부 등에 넘겨준 통신진흥기금을 도로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지경부 등 타 부처와 심각한 마찰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IT 진흥이 밥그릇 욕심만 낸다고 될 일은 아니다. 변의원의 충고대로 내부 의사결정 시스템부터 시장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개혁하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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