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통제하려 한' 해경

뉴스1       2025.10.26 09:00   수정 : 2025.10.28 08:41기사원문

故 이재석 경사의 영결식


(인천=뉴스1) 이시명 기자 = 인천 옹진군 꽃섬 갯벌에 고립된 70대 노인을 구하려던 해양경찰관 이재석 경사가 희생된 지 한 달 조금 넘게 지났다.

단순한 순직 사고로 보기엔 아직도 납득되지 않는 구석이 많다. 왜 혼자 나섰는지, 왜 보고는 늦었는지, 그리고 왜 현장의 판단이 지휘 라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모든 질문의 중심에는 해경의 '선조치 후보고'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이 원칙은 위기 대응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관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먼저 조치하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말 속에는 '잘못되면 그때 가서 따지겠다'는 지휘 라인 상관에 대한 면죄부가 숨어 있다. '보고 없이 당신이 한 일이니 책임도 당신에게 있다'는 책임 전가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사의 희생은 이 구조적 맹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한 사례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경사가 마지막으로 교신한 뒤 약 30분이 지나서야 중부해양경찰청 등의 상급 기관에 보고가 이뤄졌다는 점이 지적됐다.

보고가 이뤄지기 전까지 당시 상황을 아는 사람은 이 경사와 단둘이 당직을 섰던 팀장 A 경위뿐이었다.

이 경사 사건의 경우, 현장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선조치 후보고는 결국 상관에게로 향하는 책임의 흐름을 끊는 구조로 작동했다.

A 경위는 사건 직후 동료들을 회유하며 실상을 은폐하려고 시도하다 적발돼 현재 구속된 상태다.

조직의 생명은 책임의 명확함이다. 위기 상황에서 보고가 안되거나 지연되고 판단의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면 자율성이 보장하는 시스템은 붕괴한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라, 함구하라'고 지시했다는 이 경사 동료 직원의 폭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진실보다 이미지, 제도보다 체면을 우선한 결과가 조직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광진 전 인천해양경찰서장과 구정호 전 영흥파출소장은 국감에서 "왜곡을 막기 위한 언론 대응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국민은 이를 '진실을 통제하려 했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진정한 '선조치'는 보고보다 빠른 행동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진실을 지키려는 용기여야 한다. 또 진정한 '후보고'는 변명이 아니라, 투명한 책임의 이행이어야 한다. 그 두 가지가 결여된 곳에서는 신속함도, 영웅도 의미를 잃는다.

이 경사 사건은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공직 사회가 위기를 맞을 때 '진실'보다 '체면'을 택하는 구조적 병폐를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조치 후보고'의 재검토다. 위기 대응은 '즉시 보고, 공동 판단, 책임 분담'의 체계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조직의 실책을 가리는 도구로 쓰일 때, 공직은 더 이상 공공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