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사칭' 보이스피싱에 셀프감금 여성…라디오 듣고 탈출
뉴스1
2025.10.29 07:00
수정 : 2025.10.29 07:00기사원문
(울산=뉴스1) 박정현 기자 = 지난달 23일 30대 여성 A 씨에게 "법원등기 배송 건으로 연락했다"는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을 '검찰 사무관'이라고 밝힌 보이스피싱범이었다.
A 씨가 "현재 등기 수령이 어렵다"고 답하자, 사칭범은 즉시 "알려주는 웹사이트로 접속해 사건 내용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혼란에 빠진 A 씨에게 잠시 후 '검사'를 사칭하는 보이스피싱범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A 씨를 범죄 연루 혐의자로 몰아가며 "당신은 범죄와 연루됐고 구속영장까지 발부됐다. 범죄 의심을 벗기 위해선 내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압박했다.
검사 사칭범은 "현재 재산 가운데 어느 정도 범죄에 연루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자금전수조사가 필요하다"며 A 씨의 재산 규모를 파악했다.
사칭범은 또 A 씨를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가동했다. 그는 "금융감독원 출입이 승인되지 않아 임시 보호관찰이 필요하다. 비용은 추후 정산된다"는 말로 A 씨를 안심시킨 뒤 그에게 특정 숙박업소로 입실하라고 지시했다.
A 씨는 그 지시에 따라 휴대전화를 추가 개통하고 이틀간 부산과 울산의 호텔 2곳을 전전하며 외부와 단절된 '셀프 감금' 상태에 놓였다.
교묘한 시나리오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A 씨는 사칭범에게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지배당했다.
사건 발생 사흘째였던 지난달 25일 오후 4시 40분 A 씨는 "또 다른 호텔로 이동하라"는 검사 사칭범 지시를 받고 택시에 탑승했다.
그때 택시 안 라디오에서 보이스피싱 예방에 관한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울산경찰청 강력계 경찰관이 출연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설명하는 특집 방송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실제 '보이스피싱범'의 녹취록과 함께 범행 수법이 상세히 소개됐다. "현재 자택에 없어 등기를 수령할 수 없으면 알려주는 웹사이트로 들어가 구속영장을 확인하라" "범죄 의심을 벗기려면 지시를 따르고 전화를 끊지 말라" 등 보이스피싱범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해당 사건을 소개한 울산경찰청 강력계 경찰관은 "검사 사칭범은 위조한 구속영장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며 "절대로 검찰과 경찰은 이런 식으로 국민에게 연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원 등기"로 시작해 "웹사이트 접속" "숙박업소 입실 지시"까지. 라디오 속 상황은 A 씨가 겪은 일과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일치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 A 씨는 자신이 지금까지 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A 씨는 다급하게 택시 기사를 향해 "경찰서로 가주세요"라고 외쳤다. 당시 A 씨는 5000만 원을 사칭범에게 송금하기 직전이었다. 이렇게 그는 사기꾼에게서 벗어났다.
A 씨를 구한 이 방송은 울산경찰청이 지난 5월부터 TBN 울산교통방송을 통해 매월 1회 편성해 온 보이스피싱 예방 특집으로, 실제 범인 음성과 최신 수법을 소개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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