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거장' 구자승 귀환…선화랑서 20년 만의 개인전
뉴시스
2025.10.29 15:59
수정 : 2025.10.29 15:59기사원문
사진보다 더한 빛과 정적의 경지 압권 ‘시간을 그린 회화’…대형 회고전 인물화, 정물화, 드로잉 등 70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작업은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다.”
정물 속에 시간을 봉인한 화가, 구자승(83) 화백이 20년 만에 다시 선화랑으로 돌아왔다.
2006년 이후 20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1983년 첫 개인전 이래 40여 년간 선화랑과 인연을 이어온 작가의 대형 회고전이다.
구자승의 회화는 메마른 나무상자, 흰 보자기, 바랜 주전자, 비워진 술병 같은 평범한 사물에서 일상의 정적을 끌어올린다.
빛과 그림자가 멈춘 화면 속 사물들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가두고 존재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림은 '붓으로 그린 회화'가 아니라 ‘시간을 그린 회화’다. 사람의 손끝에서 이런 정적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빛이 물체를 비추는 순간조차 완전히 ‘정지’되어 있다.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존재의 정밀한 포착, 마치 시간의 정물화 같다.
보통 극사실주의는 카메라의 눈을 따라가지만, 구자승은 오히려 카메라보다 느리게, 더 깊게 들어간다.
그 느림 속에 색의 진동, 공기의 층, 작가의 숨이 다 들어있다. 그래서 그 결과물이 '인간이 그린 게 맞나' 싶은 초월의 감각을 준다.
이번 전시는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드로잉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일상의 오브제를 주제로 한 정물화에 집중하며, 구자승 특유의 ‘정밀함 속 고요’가 드러난다. 사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현실보다 더 고요하게 존재한다.
한때 구자승의 회화는 ‘차갑고 세련된 구상’으로 불렸지만, 그 속엔 인간적인 온기가 있다.
빛이 스치는 순간조차 고요하게 봉인한 그의 회화는 빠른 속도의 시대에서 ‘멈춤’의 감각을 선사한다. 사진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묘사 속에서, 작가는 존재의 깊은 울림을 남긴다.
구자승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OCAD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국내외 개인전 28회, 초대·국제전 690여 회에 참여했으며, 사실주의 회화의 한 축을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김환기미술관, 프랑스 쇼몽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싸롱비올레 은상, 오지호미술상, 올해의 최고예술인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선화랑 원혜경 대표는 “구자승의 회화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사유의 기록”이라며 “멈춰진 사물의 정적 속에서 영원의 감각을 전한다”고 말했다.
사진이냐 그림이냐, 이제 구분은 무의미하다. 도저히 붓으로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는 내공.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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