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로맨스, 성공적'
뉴스1
2025.10.30 07:00
수정 : 2025.11.04 08:29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동남아시아 여행지 중 한 곳으로 사랑받던 캄보디아는 어느덧 '한국인 킬링필드'로 전락했다. 한국인 부부 총책이 같은 한국인 100여 명을 대상으로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을 벌였다는 소식에 이어 한국인 대학생이 현지 범죄 조직으로부터 고문을 당해 숨졌다는 비보까지 전해지면서다.
국민 불안이 커지자 정부가 바빠졌다.
그 뒷맛은 씁쓸하다. 한국인 대상 로맨스 스캠, 보이스피싱은 신종 범죄가 아니다. 중국계 범죄 조직이 본격적으로 동남아 국가들로 본거지를 옮겨가던 때인 2020년대 초반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귀국하지 않은 한국인 수도 늘었다. '고수익 보장 일자리'란 미끼에 속아 범죄에 가담하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국제기구의 경고에도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5월 성명에서 "(동남아 범죄 단지 내) 다양한 국적의 수십만 명이 온라인 사기나 범죄 조직 운영에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며 긴급조치가 필요하다고 통보했지만,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넋만 놓고 있었다.
동시에 한국 경찰에서는 외사국이 폐지되고 1100명에 달하던 외사 기능 인력이 다른 부서로 옮겨가면서 국제 범죄 수사의 전문성과 해외 공조체계가 약화했다. 결국, 변화하는 범죄 유형에 역행하는 정책과 뒷북 대응이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를 키워 지금의 캄보디아 사태를 빚은 셈이다.
120억 원대 로맨스 스캠으로 공분을 산 한국인 총책 부부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도 아직 송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지 경찰과의 유착이 그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 부부는 우리 정부가 실기(失機)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캄보디아에서 저지른 로맨스 스캠이 성공적이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지는 않을까.
범죄 발생 후 뒷수습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를 예방하는 일에는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국제 범죄 예방에 있어 그 성과가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고 뒷전으로 미루고 인력과 예산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반복되는 범죄를 해결하는 데 사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다.
범죄는 진화하고 점점 음지로 파고든다. 제2의 캄보디아 사태가 벌어진다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각종 범죄 신호와 경고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보다 견고한 국제 공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활용한 신속한 초동 대처도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그 피해는 또 다시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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