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평온함 되찾자… 국내 1기 해양치유 코디네이터 탄생
파이낸셜뉴스
2025.11.03 18:24
수정 : 2025.11.03 18:23기사원문
국립한국해양대-한독문화협회 '해양치유 시민아카데미' 성료
"자연의 생명력 성찰이 곧 치유"
유럽 200년 전통 블루 헬스 공부
의료 넘어 내면 회복 경험도 쌓아
시민 주체 새로운 치유모델 제시
이번 아카데미는 국립한국해양대학교 RISE사업단(단장 이서정 교수)이 주최하고, 국제해양문제연구소와 한독문화교류협회 LIDO KOREA가 공동주관했다. 200년 전통의 독일식 해양치유(Blue Health, Kur) 시스템의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시민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능동적 자가치유 모델, 즉 한국형 K-Cure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은 단순히 바다를 소비하는 관광형 치유가 아니라 시민이 주도적으로 바다와 교감하며 스스로를 회복하는 과정에 있었다. 참여자들은 수동적 체험자가 아닌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감각을 깨우고 정서를 회복하는 치유의 주체로 성장했다.
독일 번 아웃 예방치유 전문가 장구스코 용선 교수(의학박사, 독일코리아재단 대표)가 '블루 헬스 : 바다가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힘'을 주제로 첫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바닷가에서의 평온함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신경생리학적으로 입증된 치유 반응임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특히 1793년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시작된 해양치유가 어떻게 국가 예방의료 체계로 발전했는지, 200년간 축적된 의료 데이터와 제도적 기반을 상세히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의사 처방에 따라 해양치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 적용도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강의 후에는 창파 김혜경 또따또가 예술가 클러스터 센터장과 박미라 실험실 C 대표의 안내로 절영도 해안에서 식물 오감 탐색과 해변 정화 활동이 이어졌다. 참여자들은 해양 생태계를 직접 체험하며, 치유 받은 인간이 다시 환경을 돌보는 상호적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바다를 통한 문학적 성찰
2강에서는 김수우 시인이 영도의 바다와 섬을 문학적 렌즈로 조명했다. 그는 영도가 지닌 역사적 기억과 인간 내면의 울림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며, 바다를 단순한 풍경이 아닌 '삶과 기억의 성찰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이어 이동건 사진작가가 '바다의 시선, 섬의 기억'을 주제로 가덕도의 빛과 바람, 풍경을 통해 자연이 품은 시간의 흔적을 탐색했다. 참여자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사라져가는 기억과 자연의 생명력을 새롭게 관찰하며, 관찰과 성찰 자체가 치유의 행위임을 체득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사진 촬영이 아니라 자연과의 소통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유럽 해양치유 문화의 인문학 뿌리
3강에서는 원윤희 교수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통해 유럽 해양치유 문화의 문학적 원형을 조명했다.
하이네는 19세기 북해의 거친 파도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시로 승화하며, 바다를 통한 정화와 해방의 길을 문학으로 기록했다. 이는 유럽에서 해양치유가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문화적·정신적 회복의 수단으로 발전한 배경을 보여준다.
이어 김경화 작가는 다대포와 낙동강 하구, 즉 강과 바다가 만나는 생태적 경계의 의미를 탐구했다. 새와 식물, 물결의 리듬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며, 생태계의 경계가 지닌 생명력과 상징성을 설명했다. 참여자들은 직접 에코백 위에 강과 바다의 만남을 그려내며,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예술적 표현을 실천했다.
4강에서는 허남영 교수가 '치유의 항해, 자기 회복의 글쓰기'를 주제로 바다를 매개로 한 내면의 회복 여정을 안내했다. 참여자들은 글쓰기를 통해 감정의 결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언어를 만들어가며 자기 이해를 깊게 했다.
■글쓰기와 음악을 통한 내면 회복
마지막 세션에서는 독일 쾰른 음대 출신 음악치유 전문가 이진주 강사가 '음악과 함께하는 해양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파도와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세계 각국의 간단한 악기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즉흥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자연과 인간,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시간은 독일 음악치유의 깊은 전통과 한국의 예술적 감수성이 조화를 이룬 순간으로 'K-Cure'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아카데미는 독일 블루 헬스의 과학적 근거를 존중하면서도 한국의 인문학·예술·공동체 정신이 결합된 자가치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참여자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체험하는 자신이 곧 치유의 주체임을 자각하며, 정서적 전환과 관계 회복을 통한 실질적 치유 경험을 쌓았다.
정문수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장은 "이번 아카데미는 독일식 Kur의 의료 모델을 넘어 시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치유의 방향을 구체화했다"며 "영도에서 시작된 K-Cure는 인문학과 과학이 결합된 능동적 해양치유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추구하는 K-Cure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치유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세우는 것"이라며 "바다와 사람이 서로를 돌보는 상호적 관계야말로 진정한 자가치유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영도는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는 블루스페이스(Blue Space)로 인문학 기반의 한국형 해양치유 모델 K-Cure가 구체화된 공간이 됐다. 이번 아카데미를 수료한 40여 명의 시민은 '해양치유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향후 지역사회에 지속가능한 치유문화를 확산시킬 예정이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