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나무 두 그루면 서울대 보냈지"…'대학나무' 제주감귤 이야기

뉴스1       2025.12.07 10:35   수정 : 2025.12.07 10:35기사원문

제주감귤데이 10주년 기념행사장(제주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뉴스1


제주감귤데이 10주년 기념행사장(제주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뉴스1


제주감귤 선과장(자료사진)/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12월 제주의 겨울은 감귤농가에서 시작된다. 귤나무에는 전정가위로 감귤을 따는 손길이 분주하고 한편에서는 노란 컨테이너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제주도는 매해 12월 1일을 감귤데이로 정해 수도권에서 제주감귤을 홍보하고 있다.

올해는 서울 보은사에서 1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12월1일에는 '겨울철(12월) 1등(1일) 과일'이라는 의미와 '당도 12브릭스(Brix) 이상, 산도 1% 이하'의 고품질 감귤을 생산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제주 산업의 근간인 감귤산업은 언제,어떻게 시작됐을까?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가 발간한 '대학나무 감귤(2021년)'에 따르면 여러 문헌 등으로 미뤄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귤을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탐라국왕세기'에는 서기 155년 탐라가 중국과 일본에 감귤을 교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일본 역사서 '고사기(712년)'와 '일본서기(720년)'에도 우리 감귤이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문헌에는 35종의 재래감귤이 기록돼있으나, 현재는 12종의 재래귤 만이 남아 있다. 현존 최고령 재래 감귤은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진귤(산귤)로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된다.

현재 산업의 기점이 되는 온주밀감 재배는 1911년 프랑스인 엄택기(Esmile J. Taque) 신부가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 시초로 알려져있다. 1913년에 서귀포시 서홍동에 일본인이 최초의 과원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감귤은 제주의 ‘생명산업’이라고 불릴 만큼 지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농민들은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다. 감귤 두 세 그루면 자녀 대학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감귤은 가계 소득의 핵심이었다.

실제 당시에는 성목 1주에서 60∼70㎏의 감귤을 수확할 수 있었는데 1968년 감귤 가격은 10㎏에 2398원 수준이었다.

1970년 서울대학교 등록금이 1만4050∼3만350원 수준이었으니 감귤나무 두 그루만 있어도 한 해 대학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수익성이 높았다.

호황기인 70~8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현재도 제주에서 감귤산업의 영향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제주 감귤 재배농가는 1977년 1만8334호에서 점차 늘어 2000년 3만6590호로 정점을 찍은 뒤 차츰 줄어 현재는 3만호대를 유지하고 있다.

재배농가는 줄었지만 생산량은 1977년 11만5500톤에서 현재 65만톤으로 약 6배가 증가했고 특히 조수입은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1조3000억원대를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감귤의 환경과 경관을 지탱하는 공익 기능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기 정화, 수자원 함양, 기후 순화, 토양 유실 저감, 홍수 조절 , 유기성 폐자원 소화 등 최근들어 감귤의 환경보전적 기능이 부각되고 있다.

감귤(원)의 연간 환경 보전 기능 가치는 1816억 원에 달하며, 감귤이 만들어내는 제주 농촌 경관 가치 역시 연간 769억 원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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