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 딜 없다더니" 말 바꾼 매각 주간사…흥국 "성과급에 눈멀어"
뉴스1
2025.12.09 16:43
수정 : 2025.12.09 16:44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당초 '한화 vs 흥국' 2파전으로 치닫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이 국내 보험사가 아닌 중국계 자본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유력 인수 후보였던 흥국생명이 매각 주간사가 "약속을 어겼다"며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선정되자 이번 입찰에 참여했던 흥국생명은 9일 입장문을 통해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힐하우스는 '프로그레시브 딜'(경매호가식 입찰)을 통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희망 가격을 1조 1000억 원을 제시하며 최고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본입찰 단계에서 힐하우스는 9000억 원대 중반의 가격을 제시해 최고가가 아니었지만 본입찰 이후 주관사측의 프로그레시브 딜 제안에 인수가를 대폭 올렸다. 경쟁자인 흥국생명은 1조 500억 원, 한화생명이 9000억 원대 후반을 제시했다.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절차는 공정하지도 못했고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당초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는 본입찰을 앞두고 소위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믿고 지난달 11일 본입찰에서 최고액을 제시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매각 주간사는 본입찰 이후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힐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하며 인수 희망 가격을 본입찰 최고가 이상으로 올려줄 것을 요청했고, 본입찰 실시 27일 만에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흥국생명은 '프로그래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던 매각주간사의 당초 약속은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높이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매각주간사가 힐하우스에 '프로그래시브 딜'을 제안하면서 흥국생명의 입찰 금액을 유출했을 가능성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제시해 본입찰을 통과한 인수 후보들을 대상으로 다시 가격 경쟁을 붙여 매각 가격을 높이는 방식을 말한다. 최종 낙찰자가 나올 때까지 입찰 기한을 두지 않고 가격 경쟁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경매와 비슷한 특성을 띠고 있어 경매 호가 입찰이라고 불린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과거부터 골드만삭스 등이 '가격 부풀리기' 수법으로 주로 사용해 온 방식이다. 골드만삭스가 주관을 맡았던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동양매직 등이 프로그레시브 딜로 매각을 진행했다.
결국, 우협 선정 가능성이 낮은 힐하우스를 내세워 인수 의지가 강한 국내 후보들이 이를 의식해 추가로 가격을 제시하도록 압박하는 미끼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흥국생명은 "매도인에게 부여된 재량의 한계를 넘어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이번 입찰 과정에서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가 보여준 기만과 불법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지스자산운용에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행정공제회 등 연기금 자금도 6조 원 이상 들어가 있다. 이들 연기금·공제회 자금은 이지스자산운용이 부동산 자산운용 선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의 10개 펀드에 투자한 자금은 총 2조 1000억 원에 달한다.
금융권에서는 중국계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쥘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정합성 등이 흔들릴 수 있다도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힐하우스가 이지스운용 경영권을 가지게 될 경우 국내 공공 성격을 가진 자산의 정보가 중국 자본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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