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수요예측에 AI 활용했다면

파이낸셜뉴스       2026.06.09 19:00   수정 : 2026.06.09 19:00기사원문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 시민의 항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민감도가 매우 높다는 방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유권자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투표율에 대한 선관위의 예측 실패다. 올해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실패해 실제보다 부족한 투표용지를 인쇄하고 준비한 행정 마인드가 결정타였다. 그렇다면 시계를 지방선거 이전으로 되돌리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일각에선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예측률을 높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AI를 도입했더라도 이번 사태를 막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AI가 수행하는 유권자 수요예측은 어차피 참고사항일 뿐이다. 선관위 공무원들은 기존 수요예측 방식에 길들여져 AI의 권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선관위를 딱 집어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행정을 맡은 공무원 사회의 관성을 말하는 것뿐이다.

이재명 정부는 '세계 최고 AI 민주정부'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각 부처에 생성형 AI 활용을 적극 장려하지만 생각만큼 빨리 확산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공기관의 데이터는 전 국민의 개인정보와 국가 행정정보를 안전하게 다뤄야 하기에 AI와 연결해 사용하는 데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AI의 할루시네이션과 보안 문제가 특히 우려된다.

그러나 이유는 딴 데 있다. 기술보다 인간의 태도가 AI 확산의 큰 걸림돌이다. 먼저, 책임의 문제다. AI가 제시한 결과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렸다가 예상 못한 책임을 담당 공무원이 뒤집어쓸 수 있다. 가령 선관위 사태로 가정해 보자. AI 예측 시스템이 "이 지역 선거는 보수 성향 유권자의 당일 투표 쏠림이 예상되니 특정 투표구의 인쇄 물량을 늘려라"고 제언했는데 수요예측이 빗나갔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나아가 진영 관점의 예측이 또 다른 선관위 정치 중립성 논쟁을 낳을 수 있다. 이럴 바에야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본인이 해온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AI 도입을 방해한다. 공무원은 자신의 경험을 AI의 통계 결과보다 신뢰하는 편이다. AI가 제시하는 데이터가 자신의 경험과 다르면 "이건 AI가 틀린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들은 과거의 성공 경험을 업무의 표준으로 삼는다. 반면 AI는 변화하는 현재의 변수를 기반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수치를 뽑아낸다. 공무원과 AI의 데이터 속성이 달라 충돌이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AI를 활용하는 시늉만 낸다는 점이다. 원래 하던 업무방식을 유지한 채 AI를 얹으면 된다는 착각이다. 복잡한 결재라인과 서류 중심의 행정방식이 바뀌지 않고 AI를 연결해 봤자 모래사장에 물 한 바가지 부은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행정업무에 AI 도입을 성공시키는 것은 사람의 태도 변화에 달렸다. AI를 단순 보조용으로 여긴다면 의사결정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대안으로 AI를 '레드팀(Red Team)'으로 공식화하는 방안이 있다. AI를 보조도구로만 쓸 게 아니라 의사결정의 반대편에 세워 일부러 딴지 거는 질문을 던지도록 역할을 주는 방식이다. 담당자가 놓칠 사각지대를 찾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허술한 조직문화도 쇄신해야 한다. 최종 결정은 결국 인간이 맡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진다는 마음가짐이다. AI를 활용한 의사결정 과정에 인간이 개입하는 구조(Human in the loop)가 명확히 서야 한다.

AI 도입의 성패는 성과로 판가름 난다.
AI를 도입했더니 업무시간은 줄었는데 실제 성과는 똑같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기껏 AI를 도입했더니 업무 처리만 편해지고, 생산성은 제자리라는 의미다. 성과 향상 없는 AI 행정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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