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각·직선 재단의 전통 의복… 나눠 입기도 재활용하기도 쉬워

파이낸셜뉴스       2026.06.09 19:15   수정 : 2026.06.09 20:43기사원문
⑬키모노(着物)

네모꼴 천을 봉합해 표준화 용이
신체 움직임에 여유 제공하는 특징
개인 체형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
화폐 대신해 다른 이에게 주기도
아이들 입던 옷, 이불·방석커버로
근면·검소 정신이 깊이 깃든 산물
'우나지'엔 은근한 관능미 느껴져
허리띠인 '오비'는 키모노의 핵심



'키모노'(着物)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입는 물건'이란 뜻이다. 여러 가지 사전들을 종합해서 정리해보니, 키모노는 직각과 직선의 포(布)를 봉합해서 만든 것이며, 굴곡과 요철로 인한 신체 움직임에 여유를 제공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방형의 천이 기본이기 때문에 표준화가 쉽고, 천을 만드는 과정의 노동이 예사롭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한 벌을 여럿이 공유할 수 있다는 설명도 이해가 간다.

좌우 동체(身頃, 미고로), 좌우 소매(袖, 소데), 좌우 섶(임, 오쿠미), 깃(共衿, 토모에리/地衿, 지에리)의 8장을 이어서 옷 한 벌을 만든다. 자갈치시장 아지매들이 공통적으로 입고 있는 '몬뻬'는 전쟁 중에 등장한 작업복이었다. 이것의 재봉 방식도 기본적으로 직선이다. 남성은 상의가 무릎까지 오는 형태로 한 벌이며, 별도의 하의는 없었다. 나중에 작업복으로 하의가 등장했다. 남성용 팬티형의 하의 착용은 말을 타야 하는 고분시대의 '하니와'(埴輪) 이후부터 근세말까지 소수의 상층 계급에서 착용한 것이고, 절약해서 살아야 했던 평민에게는 하의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직선의 옷에서 신분의 옷으로

'위지동이전' 왜인조에 관두의(貫頭衣), 즉 천의 중앙에 구멍을 뚫어서 머리를 그 속으로 넣어서 입는 통옷을 소개했다. 이 방식을 '반령'(盤領, 아게쿠비)이라고 한다. '치하야'(千早)라는 이름의 1장으로 만든 통옷이 일본 최초의 의복이었으며, 여기서 4장과 8장의 조각으로 점차 진화했다. 서기 238년에 옷깃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방령'(方領, 타레쿠비)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백제왕이 봉공녀(縫工女) 마케츠(眞毛津)를 보냈고, 그녀가 의봉(衣縫)의 시조가 되었다"고 8세기의 역사인식을 기록한 것이다. 키모노가 담고 있는 색채와 문양의 복식생활사가 대장정으로 전개되어, 옷을 통한 신분과 계급의 사회조직이 잘 드러난다.

무가에서 통옷인 아게쿠비 방식의 치하야 전통이 근세까지 유지됐던 점도 남성 복장의 특징이다. 의복을 상하로 구분하는 방식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키모노에 대응되어 근대화된 옷의 단어가 양복(洋服)이다. 도입된 양복은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전개되었고, 현재의 키모노는 비일상화된 상태이며, 양복이 일상의 자리를 대체하는 복식혁명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모노는 일본 여성의 상징임은 부동의 자리고, 키모노라는 이름 자체가 역사의 시발점을 증언한다. 기본 형식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백제로부터 전래된 봉재기술이 키모노에 녹아 있다는 점을 증언한다.

일본 인류학의 선구자 츠보이 쇼고로는 1887년 3월 26일 우에노공원(上野公園)에서 두발형과 복장 및 신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동경인류학회잡지에 보고했다. 이날을 택한 이유는 벚꽃 만개 시점에 이뤄지는 꽃놀이에 모이는 군중을 겨냥한 것이었다. 남성은 절반, 여성은 불과 몇 퍼센트 정도의 서구화를 보였다. 복장의 서구화 붐이 남성 쪽에서 급속히 진행되었음을 지적했다. 1890년 교육칙어가 반포되면서 복고주의가 강화되었는데, 학교장은 기념일에는 반드시 검은색 프록코트를 입고 교육칙어를 낭독하도록 규정했다. 청일전쟁 후 중학교가 설립되면서, 절충식으로 안착한 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교복이란 것이고, 나는 대학 시절에도 교복을 착용했다. 밖으로부터의 압력, 이것이 근대화 동력의 기본이었다.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서양에서 수입된 양복은 체형의 곡선에 맞춰서 제작하는 것이다. 이 공정에는 미싱이라는 기계가 동원되지만, 키모노는 미싱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키모노는 개인 체형의 엄밀한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일하기에 편한 옷이고, 남에게 주기도 쉬운 물건이기도 하여 화폐를 대신하기도 했다. 키모노와 관련되어 놓칠 수 없는 말에 계당접합(繼當接合, 이어대어 이어맞춤)이란 표현이 있다. 의복을 입수하여, 그것을 해체해서, 천으로 되돌려서, 그 천을 다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불커버나 방석커버는 아이들이 입던 옷을 해체해서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말하자면, '의전'(衣前)과 '의후'(衣後)로 연속되는 연쇄작동(chain operation)이 일상의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지혜인 셈이다. 누더기의 영광과 자랑, 근면 검소와 재활용의 정신이 깊이 깃든 결과의 산물이다. 물건의 연속성과 계속성이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실천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을 말하며, 이러한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모습은 가(家) 계승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나지·가문·오비에 담긴 일본의 美

앞은 다소 긴장감을 보이지만, 뒤는 헐렁할 정도로 여유로운 느낌이다. 얼굴을 먼저 보아야 하는 전면에 비해서 키모노 감상의 포인트는 뒤태다. 위로부터 순차적으로 우나지(목덜미), 가문(家紋), 오비(帶) 3가지를 거론하고 싶다. 한국인에게 목덜미는 '꼼짝없이 붙잡히는' 덜미로 연상되지만, 키모노에 관한 한, 우나지로부터 은근한 섹스 어필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내용이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과 요사노 아키코의 작품뿐만 아니라 에도시대 우키요에의 대가 키타가와 우타마로의 그림에서도 잘 표현됐다. 우나지는 여성 신체의 부분을 통한 집중적인 에로티시즘, 그리고 감히 근접할 수 없는 황홀한 거리감을 드러내는 시각적 표현으로 등장한다. 요사노 아키코의 시집 '헝클어진 머리칼'(1901년)에 드러난 우나지의 표현은 여성의 관능적 욕망과 해방된 자아를 노래함으로써 메이지시대의 문단에 격한 충격을 가하고도 남았다.

집안을 상징하는 가문은 동그란 원 안에 여러 종류의 문양으로 가옥이나 가보에 표현된다. 혼인한 여성이 남편을 '주인'으로 지칭하는 관습이 철저하고,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부부동성의 명치민법이 작동하는 이 세상 최강의 가부장권 사회가 일본이다. 여성의 키모노에는 우나지의 바로 아래와 소매 중간의 팔꿈치 부분에 자그마하게 '온나몬'(女紋)이라는 가문을 새겨 넣는데, 관서지방에서는 남편 쪽의 가문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 쪽 가문을 적용한다. 부부별성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모변가문(필자가 만든 말)이 관행되고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래전부터 오랫동안 이어왔던 관습인 공계혈통(cognatic descent)의 유제로서 통용되는 온나몬에 주목하게 된다.


기능상으로는 일종의 허리띠에 해당되는 오비는 그야말로 키모노의 꽃이지, '등에 진 방석'이 아니다. 오비의 예술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을 써야만 한다. 크기와 가격의 천차만별도 놀랍지만, 오비에 들이는 정성이 문외한의 상상을 넘어선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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