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상반기 ‘경영성적표’가 나왔다.
전체 평점은 지난해보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낙제를 간신히 면한 수준이다. 은행권 2차 구조조정에 더 이상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는 의미다. 은행들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화돼 성적 차이는 더 커졌다. 특히 지방은행들은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존립기반이 매우 위태로워졌다. 대우를 비롯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업체의 정상화가 지연될 경우 일부 부실은행의 손실은 더욱 불어나 금융시장에 심각한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잠재부실이 문제=잠재부실에 대해 쌓은 대손충당금의 비율이 은행별로 달라 공식적으로 집계된 성적과 잠재부실을 모두 반영한 실제성적에 큰 차이가 있었다. 잠재손실을 모두 반영할 경우 17개 시중·지방은행 중 절반 이상인 9개 은행이 낙제(적자)였다. 특히 지방은행은 6개 은행중 부산은행을 제외한 5개 은행이 적자를 냈다. 그러나 잠재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성적표상으로는 적자 은행이 6개에 그쳤다. 이처럼 잠재부실 반영비율에 따라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서는 곳은 서울·외환·대구은행이다.
잠재손실 100% 반영을 전제로 적자폭이 가장 큰 은행은 서울은행. 이 은행은 7174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어 한빛 7104억원,외환 2541억원,광주 1928억원,평화 1107억원의 순. 이들 대부분은 정부가 오는 10월쯤 설립한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은 은행들이다.
반면 우량은행들의 성적은 매우 좋았다.
특히 주택은행은 잠재손실에 100% 충당금을 쌓고도 3752억원의 대규모 흑자를 냈다. 이어 국민·신한은행이 각각 2200억원대의 흑자를 냈다. 중견 우량급인 하나·한미은행의 성적도 양호한 편. 제일은행 역시 정부가 모든 부실을 털어준 덕택에 손쉽게 1427억원의 흑자를 냈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총자산에 대한 당기순이익률(ROA)도 은행간 편차가 매우 컸다.
1위는 주택은행으로 1.45% 이어 신한이 1.07%,제일이 1.0%로 선진국 우량은행 수준(1.0∼1.5%)에 다다랐다. 국민과 하나는 각각 0.64%와 0.49%. 그러나 다른 은행들은 0.1∼0.2%대였으며 평화·광주·제주·전북·경남은행은 마이너스였다.
금융감독원은 새로운 자산건전성분류기준(FLC)에 따른 대손충당금은 연말까지 100% 반영하기로 했고,워크아웃 업체에 대한 대손충당금도 당초 연말까지 적립금의 50%를 쌓도록 한 만큼 이를 한꺼번에 반영한 것은 공식 영업실적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잠재손실을 감안하지 않은 영업실적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시급한 은행 구조조정=잠재부실을 감안한 상반기 영업실적은 2차 은행구조조정이 매우 시급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한빛·서울·평화은행과 부산은행을 제외한 지방은행은 영업력 제고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 은행이 조기에 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자금 수급에 문제가 생기고 기업 신용경색은 더욱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상반기 흑자를 낸 은행들도 현재의 자금시장 불안을 감안할 때 워크아웃 기업과 일부 대기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정상기업으로 분류돼 있지만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도 많기 때문이다.
/ kyk@fnnews.com 김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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