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고 막혔던 핏줄이 비록 잠시나마 다시 이어진 2000년 8월 15일 서울과 평양의‘상봉 드라마’에 눈물을 흘린 것은 남과 북만이 아니다. 가슴이 따뜻한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함께 눈물로 이들의 만남을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이날 코엑스의 남측 상봉장에 걸린 대형 이미지 형상물에 기록되어 있는 남북 이산가족 7만 9183명의 명단을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지난 83년 이후 상봉을 신청한 이들은 이날 상봉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에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었을까. 9월에도, 10월에도 만남을 주선해 주자는 북측 제안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이번처럼 한번에 100명으로 그 숫자를 제한한다면 이들이 다 만나기까지는 무려 800회,한달에 한번을 전제로 한다면 7년의 세월이 걸린다.또 신청하지 않은 모든 이산가족의 상봉이 실현되자면 50년 이상이 걸리게 된다.
모든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길은 상봉을 제도적으로 확대하는 길 뿐이다. 만남을 주선할 때마다 신청을 받고 생사를 확인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상봉의 근본 취지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우선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여 남과 북 당사자들에게 알려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서신왕래,나아가서는 면회소와 같은 특정 장소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또 접근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남을 위한 기초적인 자료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살아있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는 비극만은 막을 수 있지 않는가. 이번 상봉이 지금까지 논의되고 실현되었던 어떤 만남보다 실질적인 것이며 또 지속적인 만남의 첫 걸음이라면 생사확인과 같은 기초적인 정보 교류가 수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남북 당국의 새로운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인공기 마크가 새겨진 북측의 고려항공이 김포에 착륙한 것은, 또 남측 국적기가 평양에 착륙하는 것은 이산가족 상봉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를 에너지원으로 하여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시켜 통일의 길을 닦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남도 울고 북도 운’ 뜨거운 눈물에 다시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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