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흥얼거리는 노래는 분명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다. 아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박자는 맞는데 가사는 ‘모란빤티바양허수’ 이다. 여덟글자를 네박자의 노래에 장단을 맞춰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내 머릿속에도 요지부동으로 입력되어있는 ‘모란빤티바양허수’는 모자·란닝구(러닝셔츠)·빤쓰(팬티)·티셔츠·바지·양말·허리띠·수건 등의 골프 라운드에 챙겨야 할 여덟가지 품목의 약자들.
남편은 클럽헤드를 닦고 있다. 이미 신발에 묻은 흙과 풀을 털어 신발가방 속에 곱게 모셔놓았다. 우산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살이 망가지지 않았는지 점검한다. 잘 닦여서 반짝반짝하게 윤이 나는 골프클럽을 가방 속으로 넣으며 혼자서 빙그레 웃는다. 옷장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의상을 살핀다. 거울 앞에 서서 상의와 하의가 색깔이나 디자인이 잘 조화되는지 몸에 대본다. 골라낸 바지와 티셔츠를 구겨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포개어 옷가방에 넣는다. 모자도 써본다. 마지막으로 티와 마커 및 그린보수기, 공을 점검하고 가방 주머니의 지퍼를 올리고선 손바닥을 탁탁 쳐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음을 알린다.
내일 새벽에 골프 약속이 있는 남편이 짐을 챙기는 모습이다. 아직 잠자리에 들기는 이른 시각이다. 남편은 퍼터를 꺼내들고 퍼팅매트 앞에 선다.
“날씨 좋대요. 내일?”
조상님 제사를 준비하듯 너무도 경건하게 내일의 라운드를 준비하는지라 나는 꼭 해야할 말도 참고 있었다.
“우산 챙겼어. 비옷도.”
남편도 내일의 날씨를 알고는 있나 보다. 하긴 골퍼가 일몰과 일출의 시각이나 기상변화에 대해 무신경할 수 있을까마는.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지나간다든데…”
타격중심에 제대로 맞은 하얀공이 완만한 경사를 타고 오르다가 구멍 근처에서 멈춘다.
“비올 확률이 20%야. 주말골퍼가 2주나 쉬었잖아.”
비바람이 몰아쳐도, 천둥·번개에 하늘이 두 쪽으로 쪼개져도, 라운드는 강행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다.
“목걸이·시계 다 빼고….천둥칠 때는 아이언 잡지 마세요.”
나는 사랑하는 지아비를 살육이 난무하는 전장에 내보내는 여인네처럼 말한다.
“벼락을 맞아서 내가 죽으면 당신은 시집 한 번 더 가도 되잖아.”
진심의 우려였는데, 받는 말 본새는 비틀려 있다. 이런 순간, 다른 여인네들은 사랑하는 지아비를 폭풍우가 몰려온다는 벌판으로 내보내면서 어떤 대사를 차용하는지 모르겠다. 상황으로 따지면 바지가랑이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만류하는 여인네가 양처(良妻)일 것이다. 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독립운동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저 좋은 짓거리, 저 하겠다’고 금쪽같은 주말에 가족은 내팽개치는 남자에게 무슨 고운말을 하랴. 나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생명보험이나 듬뿍 들어있다면 모를까, 아직은 아니니까 살아서 돌아오세요.”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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