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조사 발표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의 이른바 모럴 헤저드의 실상에 대해 우리는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조사대상 44개사 가운데 정도가 심한 미주 그룹 박상희 회장·진도그룹 김영진 회장·신호 그룹 이순국 회장 등과 신동방을 비롯한 8개사는 국세청에 세무조사를,1개사는 공정위에 조사를 의뢰한 금감원의 조치를 보고 우리는 이들의 행위가 모럴 헤저드 차원이 아니라 엄연한 범법행위라고 판단한다.
개인소유 부동산을 회사에 비싼 값으로 매각하여 계열사 증자에 충당했으면서도 아직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거액의 회사돈을 빌려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회사돈과 어음으로 인수기업의 보증채무를 변제한 케이스도 있다.또 기업개선 작업 과정에서 채무재조정을 받은 18개사 가운데 10개사는 여전히 실패한 기업주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담보로 한 워크아웃은 이들 실패한 일부 오너 경영자들의 위상확보와 영달에 이용당한 결과가 되고 있으며 이들이 이처럼 오만할 수 있도록 방관한 당국과 채권은행의 책임 역시 적지 않다.
이 가운데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미주그룹의 박상희 회장의 경우다. 물론 그의 부동산 매각이 워크아웃 이전이었으며 그 대금으로 증자한 미주철강의 감자로 부동산만 날린 결과가 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과연 실패한 경영자가,그것도 금감원이 세무조사를 의뢰한 상황에서 경제단체의 장으로서 업계 이해를 대변하여 정부와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또 여당 국회의원으로 당당하게 민의를 대변하고 국정을 논의하는 데 지장이 없는지 묻고 싶다.
서면에만 의존한 금감원의 이번 조사는 당사자의 진술을 듣지 못한 것을 비롯하여 몇가지 문제가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면 조사에서도 이처럼 엄청난 비리가 적발되었다면 계좌추적을 비롯한 실질 조사에서는 더 많은 탈법이 밝혀질 개연성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국세청과 공정위에 조사를 의뢰한 금감원의 이번 조치가 이 문제에 대한 마무리가 아니라 부도덕한 이들 실패한 기업주에 대해 법적·도덕적 책임을 추궁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될 구조조정의 고통 분담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요구할 논리적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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