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매각실패, 이것도 문책인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0.11 05:11

수정 2014.11.07 12:34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 매각실패에 대한 문책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이와같은 안일한,그리고 무책임한 당국의 자세가 바로 외국기업으로부터 농락당할 여지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심을 떨쳐낼 수가 없다. 금융감독원이 내린 문책은 한보매각 계약을 주도한 제일은행장과 자산관리공사 사장에 주의적 경고를,대우자동차 매각을 주도한 대우구조조정 추진협의회 의장에 대해서는 채권금융기관이 책임을 묻도록 지시한 것이 고작이다. 더군다나 주의적 경고를 받을 제일은행장의 경우 그 대상이 전임 행장인지 현 행장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아 이번 문책이 요식행위임을 말해주고 있다.

실패한 사안에 대해 책임을 묻고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은 단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여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는 사후수습과 교훈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문책은 엄격하고 투명한 진상 조사가 전제될 때에만 비로소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번 문책은 당사자 처벌도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대우자동차와 한보매각실패가 밝혀졌을 때 대두된 문책론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던 당국이 대통령의 한마디에 불과 며칠만에 실무 임직원은 물론 정부관계자에 대한 면담조사 한번 없이 관련서류만 검토한 끝에 현실적인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주의적 경고를 내린 것은 문책이 아니라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것이 된다.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문책을 하지 않음만도 못하다. 문책할 일이 있으면 대통령이 나서기 전에 단안을 내려야 했으며 현실적으로 문책할 수가 없다면 대통령지시라고 해서 무리를 하는 것 역시 온당한 일이 못된다. 이러한 점에서도 금감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우차와 한보 매각이 당국의 지시나 승인 없이 이뤄졌다고는 볼 수 없다. 만약 실무책임자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성 문책이 배후에서 원격조종한 당국자에게까지 파급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만에 하나 그러한 의구심에 개연성이 남는다면 ‘실패의 진상’을 냉정하고 엄격하게 조사하여 밝힐 필요가 있다.
원격조종한 정부당국자를 문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만이 동일한 실패의 반복을 막기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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