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달려라 TSR(1)]'극동의 眞珠' 품고 시베리아를 깨워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0.18 05:13

수정 2014.11.07 12:28



블라디보스토크가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경의선 연결구상과 맞물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시발점이라는 이 도시의 지리적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천혜의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이제 오랜 군사적 색채에서 탈피해 러시아 극동지방의 경제·문화·해양·물류의 중심을 지향하고 있다. 연간 승객 1억5000만명과 화물 1억t을 수송하는 TSR의 출발점으로서 ‘극동의 진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TSR는 과연 ‘꿈의 실크로드’가 될 것인가. 정필수 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과 본지 김종일 기자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TSR를 따라 달려 보았다.

지구표면의 3분의 1을 달리는 TSR는 총길이 9300㎞로 세계에서 제일 긴 단일 노선이다.
복선·전철화된 구간을 평균시속 70㎞로 달리며 60개 역에서 정차한다. 화물전용 열차의 경우 전 노선을 주파하는데 여객전용 열차보다 3일이 많은 10일이 소요된다.

모스크바행 여객전용 특급열차 러시아호는 객차 20량에 8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2일에 한번씩 출발한다. 4인용 ‘쿠페’칸을 이용할 경우 모스크바까지 운임은 1인당 2500루블(약 10만원) 정도다.

TSR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시베리아 대륙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1세기 첨단기술과 국제자본이 결합해 광활한 자원의 보고를 개발하자면 물류망의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

1891년 첫 삽을 뜬 931㎞의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 구간은 TSR 6개 공사 구간 중 최초로 1897년에 완공되었다. 당시에도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지방의 개발에 그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 극동해운의 루고베츠 사장은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에 각별한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1904년 러·일 전쟁 발발시 바이칼∼아무르 구간의 공사가 끝나지 않아 패전할 수밖에 없었던 철도 단절의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다. 아마도 그는 이런 역사적 교훈을 생각하며 TSR가 부산까지 연결될 때 얻을 상승효과를 1916년 TSR 전구간 개통으로 얻었던 성과와 비교하는 것 같았다.

‘시베리아’는 몽골어 ‘시베르(잠자는 대지)’에서 유래됐다. TSR 연변에는 석유·가스·티타늄·석탄·구리·금 등 다양한 지하자원과 경제성 높은 산림자원이 개발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는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자원을 얻기 위해 호주·남미·동남아 등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이제 북쪽의 시베리아와 철도로 직접 연결된다면 시베리아는 일약 경제적인 자원 조달원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TSR가 지나는 철로주변은 우랄산맥에 이르는 7000㎞의 서시베리아까지 광활한 황무지의 연속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열차만 외롭게 달리는 무인지대, 자작나무 숲의 행렬이 3∼4일씩 이어지는 타이가지대, 바이칼 호수 남단을 지나는 데도 한나절이 걸리는 시간의 무감각지대가 펼쳐진다. 동시베리아는 개발의 손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툰드라지대의 특성상 늪지가 많아 여름에는 모기와 물 때문에, 그리고 겨울에는 추위로 땅이 얼기 때문에 인력의 투입이 쉽지 않다.

그러나 바이칼호를 지나 우랄산맥에 이르는 서시베리아는 드문드문 개척의 손길이 닿아 있다. 아직도 철로가 지나가는 주변에 한정되지만 오랜 기간에 걸친 개발 흔적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최근 TSR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화물의 운송통로로 적극이용되고 있다. 극동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는 TSR편 화물운송은 시간·비용면에서 해상운송과 서로 경쟁중이다. 지난 75년부터 컨테이너의 운송이 시작되어 한때 11만TEU까지 취급했으나 최근 해상 운송이 서비스 개선, 낮은 운임을 앞세워 경쟁력을 회복하자 TSR 이용이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다. 일본·한국 등 극동지역에서 TSR로 러시아를 관통하여 핀란드·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향하는 통과화물의 경우 해상운송과의 경쟁이 특히 치열하다.

TSR와 해상운송은 소요시간이 다같이 24∼25일로 비슷하다. 따라서 운임과 서비스의 질이 경쟁력을 판가름한다. 해상운임은 단일체계다. 반면에 TSR운임은 복합운송 단계가 추가되고 다수 운영관계자가 참여하는 관계로 비용절감 면에서 호소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가 있다. 결국 화주를 설득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은 종합적인 서비스의 질이다. 낮은 운임·빠른 운송시간 및 안전한 운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종합적으로 보아 TSR를 이용해 유럽으로 운송되는 장거리 통과화물의 경우 시간·비용·서비스의 질 등 모든 면에서 개선이 가능하고 해상운송과 비교하여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TSR운영협의회 루코프 사무국장은 공동협의를 통한 서비스 개선 및 경쟁력 회복에 자신감을 보이며 러시아 철도부가 화물유치활동에 앞장설 것을 확인하고 있다. 허종 한국해륙운송 사장도 동유럽·핀란드 및 모스크바행 화물은 TSR를 이용할 경우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TSR를 이용하여 러시아·중앙아시아·동유럽 등지로 운송되는 내륙화물은 해상운송에 비해 경쟁력이 강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해상운송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서유럽행 화물의 TSR이용 활성화는 단기간 내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의선이 재개통되어 한반도에서 TSR로 직접 철도 운송망이 연결되면 TSR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은 명약관화다. 이에 대비해 한·러 양국 철도 운송 관계기관 및 운영업체는 상호 협력을 통해 광궤철도로의 환적시설 확대 등 서비스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협의체를 구성하고 사전에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TSR의 기점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류 기반시설을 충실히 확충한다면 ‘극동의 진주’가 될 수 있다.

/정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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