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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빛과 그림자]˝시장개방 강요로 선·후진국 차별 심화˝

최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06 05:19

수정 2014.11.07 12:13


선진국 주도로 추진되던 세계화, 구체적으로는 ‘전세계의 자본주의화(化) 프로그램’이 몇 년 전부터 격화되고 있는 ‘반(反)세계화’라는 뜻밖의 역풍을 맞아 최대위기에 몰렸다.

이를 계기로 세계화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 세계화가 애초부터 필요한 것이었느냐는 물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 주간 비즈니스 위크가 최근호에서 진단한 세계화의 문제는 극단적인 시각에서 탈피해 차근하게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비즈니스 위크가 내린 결론은 “서둘러서 좋을 것은 없다”는 것이다. 즉 공감대가 좀더 폭넓게 형성되지 않으면 세계화는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전세계 모든 국가에게 똑같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옷을 입히려고 욕심부렸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논리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어깨를 나란히 했던 사회주의에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은 사실이나, 전체주의나 교조주의가 사회주의 시대에나 통했던 것처럼 ‘세계화의 일방적인 추진’은 무리가 있었다는 게 비즈니스 위크의 분석이다.

다음은 반세계화 운동을 계기로 비즈니스 위크가 되돌아본 세계화의 이상과 현주소의 요약이다.

◇세계화는 인류공영의 보증수표인가=반세계화 시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세계화는 과연 ‘모든 국가를 번영시키는 처방인가’에 대해 정부, 주류 경제학자, 기업체 등 세계화 추진세력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되돌아본 결과는 세계화의 핵심내용인 ‘시장의 개방화’가 늘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방화 정책을 추구하는데도 경제가 침체상태를 면치 못하는 나라와 오히려 세계화로 인해 사정이 악화된 나라도 많다. 지금까지의 세계화가 올린 성적은 천양지차라고 할만큼 나라마다 차이가 극심하다. 동아시아 신흥국가들은 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반면, 남미와 아프리카는 아직도 경제발전이 저조하다.

특히 남미 국가는 비교적 폐쇄적인 경제체제였던 지난 60∼70년대에도 국민소득이 75% 성장했으나 80∼90년대에는 오히려 성장률이 6%로 크게 뒷걸음질쳤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 위치한 아프리카 국가와 동구권의 국민소득 역시 사실상 줄어든 상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서 하루 생활비가 1달러에 불과한 사람은 무려 130만명이며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질 차이도 세계화 추진의 큰 걸림돌이다. 선진국은 노동·인권·환경 등 삶의 질을 꾸준히 향상시켜 왔으나 아직도 지구촌에는 삶의 질이 19세기 후반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나라도 많다.

존 러기 유엔 사무차장은 자유무역과 투자시장 개방의 혜택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세계화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난 90년대부터 세계화를 이끈 세력, 즉 미 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이 줄기차게 내세웠던 주장은 ‘모든 나라가 무역시장·외국인 직접투자시장·단기자본 시장을 가능한한 일찍 개방해야 고통이 따르더라도 모든 국가가 번영할 수 있다’다. 이들은 또 모든 국가가 시장을 개방하면 어떤 조건 아래서도 경제번영이 이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보면 그같은 주장은 순진하고 이기적인 발상이었음이 드러났다. 개발도상국들이 계속 성장을 추구하려면 외국자본과 외국의 금융기술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현실은 이론과는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IMF 마저도 “지나친 시장개방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각종 대형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한 개발도상국 대부분에게 남은 것은 심각한 자금난과 눈덩이처럼 불어난 외채였다. 이는 실제로 지난 94년부터 불거진 멕시코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위기로 증명된다.

이같은 자성에 따라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세계화에의 ‘현실적 접근’이다. 현실론은 ‘자유무역과 민간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세계경제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성장과 빈곤퇴치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접근방법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현실적인 세계화 이행론은 국제자본이동과 국제무역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다국적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특히 법치질서가 취약한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입장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IMF 예찬론자에서 비판가로 전향한 세계은행 전 수석연구원 조셉 스티글리츠는 “세계화 주도세력들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잘못된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본 나라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 눈높이에만 맞춘 기준=지난 93년 미 의회가 방글라데시에 대해 수입금지 조처를 내린 적이 있다.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후진국이라며 내린 이 조처 때문에 많은 방글라데시 미성년 여공들이 환락가로 내몰려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모든 국가에 딱 들어맞는 전지전능한 정책은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그같은 조처가 바로 선진국들이 후진국의 정치·사회·경제적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자기네들 잣대로만 정책을 밀어붙인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다.

후진국들이 세계무역기구의 노동·환경문제 제기에 반발하는 것은 서방선진국 보호정책주의자들이 이득을 보고 말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이 사실상 지키기 어려운 노동기준의 도입을 강요함으로써 선진국 노동자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유엔이 지난 5월 ‘글로벌 콤팩트’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최대다수의 국가들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인권·환경·노동 기준을 만들어 다국적기업들이 따르도록 하고 시민단체들이 이를 감시케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쉘, 나이키 등 40여개 다국적기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 rock@fnnews.com 최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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