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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빛과 그림자-석학 4인의 좌담]˝문화배경없는 경제발전 추구는 위험˝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06 05:19

수정 2014.11.07 12:13


숨가쁘게 진행되어 온 세계화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천년 들어 세계 곳곳에서 급속하게 추진되어 온 세계화는 경제·사회적 효율을 높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지구촌 전체의 부(富)를 늘리고 세계차원의 번영증진에 이바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이런 한편으로 선진국 위주의 거센 세계화 물결은 그 진행과정에서 수많은 소외 국가와 계층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간·개인간 빈부격차를 더 벌림으로 부작용을 심화시켰다는 지적과 비판도 만만찮다.

세계화를 둔 찬반 양론이 새삼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화의 문화적 측면에 주목한 석학좌담과 경제·사회적 부작용을 분석한 특집기사로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해 본다.

좌담주제:세계화의 특성·경향 및 영향

좌담일:2000년 10월25일

좌담장소:베를린 자유대학교 클럽하우스

참석자:아서 스토크윈 교수 (옥스퍼드대·정치학 박사)

갈렌 암스투츠 교수 (하버드대·종교문화사회학 박사)

아키라 구도 교수 (도쿄대·경제사학 박사)

―박성조 교수=파이낸셜뉴스가 주관하는 ‘세계화의 특색, 경향 및 영향’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0월20∼21일 2일간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계기로 일부에서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에 대해 많은 비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시애틀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세계화 반대시위로 무산됐고, 지난 9월 프라하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의 영향에 관해 불만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세계화는 자유화·규제완화·민영화 등을 전제로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쟁력이 강한 나라가 경쟁력이 약한 나라를 궁지로 몰아 넣고 경제력이 풍부한 나라와 빈곤한 나라간 차이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세계화가 전인류에게 복지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의심하는 등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극복 이후 새 세계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남북화해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으며 현재 토론되는 ‘한일 자유무역지대’도 새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현안이 대두되고 있으며 그 해결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지 먼저 암스투츠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암스투츠 교수=간단히 말해 무제한적 경제 경쟁이라고 봅니다.문제는 이러한 무한 경쟁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도덕적·문화적 제어 메커니즘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스토크윈 교수=저는 조금 상세히 말하겠습니다.세계화에는 4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인터넷과 같은 통신정보 기술의 등장, 둘째 금융자원의 급격한 흐름, 셋째 영어가 독보적 위치에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시장경제를 위주로 하는 컨셉(개념)이 지배적이며 나아가 ‘작은 정부’ 시대라는 점입니다.즉, 세계가 기업인 우선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구도 교수=제 의견은 다릅니다.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제 금융자본이 미국으로 몰리고 있습니다.미국 중심으로 금융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이 특징적이라고 봅니다.

―박교수=구도 교수님은 특히 미국 금융자본의 힘을 말씀하셨는데 저도 이런 맥락에서 이를 ‘글로메리카나이제이션(Glomericaniza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세계화는 달리 말해 ‘미국 주도권의 세계적 전파’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구도=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냉전이 끝나고 미국의 정치적 주도권이 점차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는 점입니다.특히 지난 80년대 미국 경제는 호황이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난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만이 정치 강국으로 남았습니다. 또 유럽과 일본 경제가 정체에 빠진 반면 미국 경제는 90년대 중반부터 경쟁력이 강한 경제 강국으로 등장했습니다.사실상 세계화는 ‘미국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암스투츠=미국의 주도권에 대해 말하자면 세계화는 정말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적·문화적 방식이 전세계에 파급되는 것과 직접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많은 나라들, 특히 많은 지식인들은 ‘미국식 경제·문화 스타일’에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스토크윈=세계화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이데올로기의 많은 부분은 틀림없이 미국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음을 확신합니다.그러나 제가 말한 많은 생각과 이데올로기의 일부분은 이미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다른 나라에서도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박교수=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개별국가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럽통합이 미국식 세계화의 대안이 될 수 있을 지, 또 세계가 미국과 유럽의 양극체제로 가지 않을 지 궁금합니다.

▲구도=유럽통합은 명실공히 미국식 세계화에 대한 하나의 강력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유로화 약세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유로야말로 ‘반(反)미국’이라고 봅니다.저는 유럽과 미국의 ‘양극 체제론’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암스투츠=유럽통합은 미국에 대한 약간의 저항을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및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유럽기업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강화해갈 것인가에 따라 양극체제론의 타당성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스토크윈=유럽통합은 미국식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럽인들의 잠재력이라고 보고 싶습니다.자유시장 경제원칙이 기본적으로 유럽연합(EU) 시장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민복지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유럽에서 일반적인 정설입니다.이것이야말로 새 세계화 모델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즉 ‘유럽식 세계화’의 핵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박교수=유럽통합이 미국식 세계화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아시아 지역을 보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만간 어떤 대안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요.

▲암스투츠=사실 아시아인이라고 하지만 여러 인종·문화·정서가 다른 사람들입니다.저는 그래서 이른바 ‘아시아인’이 유럽인들보다 더 문화적 통합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계기가 없었다고 봅니다.문화적 통합이 없으면 서로 신뢰가 불가능 하지요.

▲스토크윈=동감입니다.사실 아시아는 유럽보다 민족·국가간 이질성이 더 강합니다. 나라의 크기(예컨대 중국과 싱가포르)도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발전수준(한국과 베트남)도, 정치체제(말레이시아와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통합이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아시아인들이 유럽인들보다 더 천천히, 크게 욕심부리지 않으면서 꾸준히 통합을 실천한다면 가능하리라 봅니다.

▲구도=제 생각은 다릅니다.가장 큰 문제는 경제 대국인 일본의 리더십이 없다는 점입니다.제가 말한 리더십이란 경제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통합능력을 모두 포함합니다.일본 정부는 통합을 위한 어떠한 주도력도 취할 태세가 없습니다.

아울러 독일은 유럽의 재편성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일본은 아시아에 아무런 기여가 없었습니다.

최근 경향을 살펴보면 일본은 영국과 비교되며 통합에 적극적이지 못합니다.유럽연합(EU)는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화교경제공동체 형성과 대비할 수 있습니다.결국 조만간 아시아에서 통합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박교수=세계화가 진전될수록 개별국가가 가진 문화의 다양성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다고 봅니다만.

▲구도=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입니다.세계의 많은 개별국가들은 지역주의를 외치고 있습니다.이는 오히려 세계화에 대한 저항입니다.문화는 더 다변화하고 있습니다.또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암스투츠=그리 쉽게 빨리 세계의 문화가 표준화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세계화는 개별국가 엘리트들이 소비성향·교육·고용 문제 등에 있어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도덕은 문화의 표준화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어떠한 의사결정, 행동을 하며 경제적 이익과 사회정의가 그들에게 어떻게 배분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경제적 부와 인간 행복간에 현실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 지 전면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돈’과 ‘행복’을 동일시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스토크윈=저는 문화가 어느 정도 표준화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각국의 교육문화가 소멸될 것에 공포감을 느껴 전통문화를 유지하려는 운동을 자극시킬 것으로 봅니다.이런 현상은 유럽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박교수=한국, 나아가 한국 통일 문제가 세계화 가운데서 받는 충격은 무엇일까요.

▲스토크윈=옛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무너졌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적·국제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감소했습니다.이는 결국 한반도 통일을 위해 좋다고 봅니다.장기적으로 남북간 접촉이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구도=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해 온 햇볕정책이야 말로 한국의 세계화 전략의 대안이라 생각됩니다.

▲암스투츠=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스토크윈=김 대통령의 치적은 단순히 한반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한일 관계 개선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그는 비전있는 대통령이며 그의 노벨상 수상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그의 철학은 ‘관용’,‘화해’, ‘인내’라고 봅니다.

―박교수=은행을 비롯한 금융 서비스 통합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암스투츠=앞서 말했듯이 국제적 메커니즘이 우선돼야 합니다.

▲스토크윈=지금 금융자본의 통합현상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문제는 소수 금융자본 소유자나 기관이 정부가 행사해온 규제 권한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현상이 많은 단점을 초래했습니다.이런 점을 어떻게 파악, 통제할 것인가가 관건이기 때문에 정부 역할에 관한 새 인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교수=마지막으로 한국 경제발전 전망에 대한 고견을 부탁드립니다.한국의 경제성장은 특히 수출 주도에 의존했습니다.그러나 이런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스토크윈=경제발전이 어떤 모델을 추구하든지 ‘정신개혁’이 앞서야 합니다.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으로부터 신 자유주의식 대처 전 총리의 경제체제, 지금의 블레어 경제 철학도 정신개혁이 부족합니다.정신개혁이 없는 발전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암스투츠=근본적으로 동감합니다.나는 처음부터 세계화 과정에서 문화·종교·정신 등이 얼마나 중요한 지 언급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국은 너무 미국 일변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국경제는 한국적 문화 배경이 내재된 가운데 한국정신아래서 발전돼야 합니다.

▲구도=금융자본의 집중화는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특히 수많은 건실한 중소기업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경제는 일본·중국·대만과 더불어 한시라도 빨리 지역경제 통합 노력에 나서야 합니다.한국은 여러 면에서 그러한 위치에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한국경제는 지나치게 미국 및 일본 지향적이라 생각합니다.물론 미국과 일본에 큰 부채를 지고 있습니다만.

이와 같이 양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특히 지식, 자본 집약적 산업을 추구하고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방법으로 국제기술을 이전받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또 부채도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무역·경제화에 있어 다원화가 절실합니다.최근에는 아셈회의도 한국에서 열렸으며 김대통령은 올 봄 유럽 방문시 유럽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한국경제는 일본·미국·유럽에 균형을 갖춘 경제 관계를 하루속히 구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박교수=장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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