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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쟁점-법정관리 기업 퇴출 문제없나]법원·건설업계·채권단 공방


정부가 지난 3일 법정관리중인 건설업체에 대해 법원과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퇴출결정을 내리자 법원이 “법정관리는 법원의 고유업무”라며 퇴출 결정을 번복,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퇴출결정으로 공사를 중단했던 해당건설업체는 금융당국의 퇴출결정에 상관없이 법원의 ‘회생’ 결정에 따라 공사를 재개하는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다. 법정관리기업 퇴출을 둘러싼 법원과 금융당국,해당업체의 입장을 정리해본다.

<[법원입장]법정관리 기업회생시키는 제도…일방 결정 안돼>

법정관리중인 일성건설과 대동주택에 대해 금융당국이 지난 6일 퇴출결정을 내리자 법원이 즉각 반박 보도자료를 낸 데 이어 그 다음날 해당기업에 공문을 보내 퇴출계획이 없다고 밝히는 등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법원측은 법정관리는 법원의 고유업무인데도 법정관리중인 기업을 퇴출시키면서 법원과 협의절차도없이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에 대해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법 파산부의 양승태 수석부장판사는 “법정관리는 기업을 퇴출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회생시키는 제도”라며 “채권자들이 기업회생을 위해 법정관리 인가에 동의를 해놓고 퇴출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행 법 제도아래에서도 충분히 퇴출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이라면 파산을 신청할 수도 있고,법정관리중이라면 법정관리 폐지신청을 할 수 있는데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법적 근거도 없이 퇴출결정을 내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컴퓨터 유통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세진컴퓨터랜드는 지난7월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했지만 주채권자인 대우통신 등이 파산신청을 내는 바람에 지난 9월20일 법원으로부터 파산결정을 받고 문을 닫게 됐다.

또 지난 9월25일 워크아웃 대상기업에서 제외된 미주실업도 지난달9일 법원에 낸 법정관리 신청마저 기각돼 19개 금융기관 채권단의 담보권 이행을 막지못하는 이상 청산이나 파산절차로 넘어갈 처지에 있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태화쇼핑은 지난 97년 부도로 법정관리가 진행되던 중 지난 9월 정리담보권자인 외국계 투자회사가 부산지법에 법정관리 폐지를 신청해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퇴출될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서울지법 파산부의 강선명 판사는 “일각에서는 법정관리를 담당하는 법원과 관리인의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자질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법원이 선임하는 관리인은 전경련 등 경영자 단체에서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로 대부분 전문경영인 출신”이라며 일축했다.

법정관리 기간이 너무 길고 채권상환이 유보되는 등 채권자에게 너무 불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법원은 “법정관리 인가는 채권상환이나 출자전환 등에 대해 채권자들이 동의를 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채권자들도 당장 기업을 청산해서 채권의 일부를 돌려받는 것보다 회생을 통해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것이 좋아서 동의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법원은 일성건설이나 대동주택과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퇴출작업에 법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 판사는 “법원과 금융당국간에 의견을 교환하는 창구가 마련돼야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오해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dream@fnnews.com 권순욱기자
<[건설업계입장]경영호전된 일성;대동 강력 반발>

금융당국에 의해 퇴출대상 기업으로 분류된 일성건설과 대동주택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법원측이 최근 이들 회사에 대해 ‘회생’ 쪽으로 가닥을 잡아줌에 따라 이들 업체의 퇴출여부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성건설과 대동주택은 ‘11·3 부실기업퇴출조치’ 이후 퇴출이 부당하다며 강력 반발했었다. 이들 업체가 퇴출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두가지다.전직원이 회사살리기에 전력 투구해 ▲경영상태가 크게 호전되고 있고 ▲자생력이 점차 생기면서 법원에서조차 회생가능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일성건설은 앞으로 신규로 대출받을 계획이 전혀 잡혀 있지 않았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크게 호전됐음을 강조한다.일성관계자는 “올 상반기에만 239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지난달 1일 채권단이 900억원의 출자전환을 해줬었다”고 말했다.

일성은 특히 퇴출 발표 이후 하도급 업체의 공사 대금 지급요청이 쇄도해 지난 4∼6일 약 60억원의 공사 대금을 모두 결제했고, 현재 밀린 하도급 대금이 없는 상태다. 일성은 최근 들어 재무구조가 좋아지고 있으며 관리인도 전문경영인으로 교체,회생에 별 문제가 없음을 강조한다.

대동주택은 이번 퇴출 평가기준이 부도직전의 회계연도기준인 지난해 자료며 화의중인 상태임에도 ‘법정관리’로 분류하는 등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대동은 특히 부도 이후 전국적으로 4924가구를 정상 입주시켰고, 추가적인 분양금 부담을 지우게 해 입주민 피해를 준 적이 없음을 상기시킨다.

대동은 또 부도 이후에도 유수업체와 당당히 경쟁해 경남 창원테니스 주경기장, 부산지하철정거장 등 관급공사를 따냈다.민간수주분야 역시 서울에 진출, 등촌동 2차, 신월2차, 신월3차 등 재건축아파트 사업을 수주했다.대동은 현재 현금화가 가능한 자금으로 194억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특히 화의 이후 지금까지 310억원 이상의 금융기관 대출을 충실히 상환해왔다고 주장했다.

대동의 한관계자는 “청산대상으로 발표된 지난 3일 이후 창원 대방동 아파트 공사현장 등에서 공사가 중단됐었다”며 “그러나 화의담당 재판부와 최대 채권자인 대한주택보증에서 채권단 발표와 관계없이 화의 계속에 동의한다는 공문을 발송해오고 회사의 경영정상화 의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전국의 아파트 등 공사 현장 40여곳의 공사가 9일부터 완전 재개됐다”고 밝혔다.

대동주택과 일성건설 뿐 아니라 건설업계는 이번 법원의 판단에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대한건설협회 김민관 정책본부장은 “부실 건설업체의 퇴출은 당연하지만 자칫 회생가능한 업체까지 일률적인 채권단 기준에 의해 퇴출시킬 경우 입주자피해,주요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차질 등 파장이 크기 때문에 회생가능한 업체는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joosik@fnnews.com 김주식기자

<[채권단입장]법정관리인 경영마인드에 의문>

법정관리를 보는 채권단의 입장은 매우 회의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줄줄이 부실기업을 떠안은 법원이 경영마인드를 갖고 이들 기업의 정상화를 진두지휘하기에는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회생 또는 청산을 결정하는 문제는 관련 업계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함은 물론 기업 경영에 대한 종합적인 식견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법원이 과연 이같은 경제적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빛은행 관리여신본부 관계자는 “법원이 나름대로 법정관리인의 전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부실기업을 살리는데 필요한 위기관리능력을 법원에 기대하기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선진국처럼 경제 전문판사를 집중 양성하지 않고는 20%에도 못미치는 법정관리기업의 회생률을 높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관리중인 일성건설의 주채권은행으로서 ‘청산’ 판정을 내렸던 서울은행의 관계자도 “법정관리의 시스템을 일대 개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부실기업의 피난처로 제도가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일성건설에 대한 ‘청산’ 판정은 채권단 입장에서 일성건설의 회생가능성 여부를 판단한 것이지 최종 결정권을 쥔 법원의 권한을 침범하려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다른 채권은행들도 일성건설에 대한 ‘청산’ 판정은 제대로 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일성건설이 올 상반기 흑자를 낸 것은 채무감면과 동결에 따른 이자감면분이 2412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감안한 실제 경영은 만성적인 적자”라고 말했다.

채권단의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채무동결과 이자감면은 채권단의 희생이자 우리 사회전체의 사회적 비용이다. 법원이 일성건설과 같은 기업에 대한 퇴출요구(법정관리폐지요구)를 기각한다면 이는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고려치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채권단은 일단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담당 판사가 기업의 자금지원 요구에 계속 ‘결제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법정관리 기업의 경영상황을 일일이 챙길 수 없는 여건때문에 담당 판사는 법정관리인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은 파산 대신 ‘회생’ 지원을 결정한 기업에 대해서는 여건이 달라지더라도 이를 번복하고 과감히 지원을 끊을 수 없는 악순화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정관리인이 법정관리대상 기업의 오너와 결탁해 회사를 무작정 이끌어가려는 시도를 할 경우 법원측이 이같은 도덕적 해이를 제대로 분별해 응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회적 비용을 다른 경제주체에게 부담시키면서 부실기업을 영속시키려는 파행에 대한 적절한 견제장치가 절실하다는 것이 금융계 인사들의 바람이다.

/ kyk@fnnews.com 김영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