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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지구촌 Golf라운드] 칠레 푼타아레나스…남극 같다던 곳에 들꽃이


“조선생,내일 새벽 비행기로 푼타아레나스로 간다 했지요. 옷을 그렇게 입고 가면 얼어 죽어요. 이 지도 좀 봐. 남극대륙처럼 온통 새하얗잖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한국식당 (남산정) 주인아줌마가 남편이 입던 위아래가 이어진 두툼한 방한복에 에스키모들이 입는 털달린 모자가 붙은 파카를 갖고 내방에 왔다.

이튿날 새벽,방한복을 껴입고 파카는 벗어들고 푼타아레나스행 비행기에 올랐것다. 칠레라는 나라는 안데스 산맥 서쪽 태평양연안을 따라 오뉴월 엿가락처럼 길게 남북으로 늘어졌다. 비행기가 두어 시간 남쪽으로 날아가다가 푸에르토몬트를 거쳐 다시남쪽으로 날기를 두어시간,고도를 낮춘다.

창밖으로 내다본 바닥은 새하얗게 되어 있어야 하거늘 어떻게 검푸르기만 하나?

비행기는 허허벌판에 착륙했다. 또 중간 기착지에 잠시 멈췄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둘러보니 승객들은 모두 내리고 나혼자뿐이다. 스튜어디스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다.

“나는 푼타아레나스까지 가는데….”

“여기가 푼타아레나스예요.” 칠레에는 하도 푼타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아서 티켓을 보이며 똑똑하게 아레나스를 강조했는데도 스튜어디스는 “그래요,여기가 푼타아레나스예요.” 이럴 수가 있나,눈송이 하나 얼음 한조각 없잖아!

얼어죽을까봐 겹겹이 옷을 껴입고 트랩을 내리니 깡깡 얼어붙은 땅은커녕 볼을 간지르는 산들바람에 땅에는 노란 들꽃이 피었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눈과 얼음은 보이지 않는다.

푼타아레나스에 와보지도 않은 남산정 아줌마의 과잉친절에 사람만 병신이 되었다.

16세기 어느날,대서양을 비스듬히 가로지른 마젤란의 대선단은 드레이크 해협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남극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미친 듯이 날뛰는 파도,바닷속 도처에 숨겨진 암초를 뚫고 드레이크 해협을 빠져나가 태평양에 이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마젤란의 대선단은 선수를 돌려 파도가 잠든 강을 따라 오른다. 강이 넓어졌다 좁아지지만 수심은 깊어 계속 올라갔다. 어느날인가 그들의 눈앞에는 태평양이 나타났다. 그것은 강이 아니라 역사를 바꾼 해협이었던 것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안전한 항로 마젤란 해협은 그때부터 오가는 배들로 비좁아졌다. 마젤란 해협에 면해 있던 조그만 어촌 푼타아레나스도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다. 상점들이 늘어서고 술집은 목마른 뱃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하오나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자 기생 떠난 술집처럼 마젤란 해협은 뱃길이 끊어지고 푼타아레나스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아직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남미 대륙의 남쪽 끄트머리 땅끝마을에 남아 있다.


사람이 있는곳 어딜가든 골프장이 있는 것은 이곳도 예외일 수는 없다.

푼타아레나스 칠레 해군기지 골프코스는 10홀이지만 중복되는 8개홀은 팅그라운드가 서로 달라 18홀이나 진배없다. 완만한 언덕을 넘으며 이어진 잘 가꾸어진 페어웨이,남극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이겨낸 꿋꿋한 소나무,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젤란 해협.

“와,세상에 이럴수가!”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눈과 얼음으로 휩싸였다던 푼타아레나스에서 파릇파릇한 잔디위로 백구를 날렸다면 남산정 주인 아줌마가 믿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