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마비된 자금시장 기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15 05:21

수정 2014.11.07 12:05


정리기업 명단과 제2차 금융구조조정의 구체적 내용 발표 이후 민간부문의 신용위험이 극에 달하면서 자금시장의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다.정부의 신용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채권시장을 지배하고 있다.지난해 기업자금조달의 70%이상을 차지했던 주식발행도 증시침체로 거의 마비되어 버린 가운데 최근에는 사채시장마저도 자금시장의 윤활유 기능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작 자금이 필요한 정상적인 기업에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도래하는 약 40조원의 회사채 부담이 시장을 짓누르면서 정상적인 기업의 영업이나 투자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당장 12월만 해도 10조원에 달하는 회사채 만기와 결산을 앞둔 은행의 BIS비율 지키기로 자금대란설이 우려된다.

집단적인 기업퇴출로 신용경색이 심화될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지만 위기를 거론할 정도로 자금시장의 불안감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1990년대초 미국의 신용경색이 극심하였을 당시 그린스펀 연준의장은 1991년 2월 의회증언에서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에 기인하는 신용경

색은 통화정책보다는 구조적 방안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같은 해 3월 연준은 통화감독청 연방예금보험공사 및 저축기관감독청과의 협조하에 금융기관이 신용있는 기업에 대해 대출을 적극 행할 수 있도록 감독차원에서 다양한 유인제도를 제공하였던 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안전위주 투자를 하는 은행들을 나무라기 전에 은행이 기업대출을 늘릴수 있도록 인센티브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BIS비율 산정에 있어 운영의 묘를 발휘하여 담보가 있는 기업대출에 대해서는 위험가중치를 완화해 주거나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정크본드 시장과 같은 시장원리에 의해 기업의 신용에 상당하는 금리를 지급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다양한 시장을 활성화시키야 한다.1997년 경우 해외에서의 신용회수가 외환위기로 이어졌다면 현재의 상황은 내부에서 신용질서가 붕괴되면서 금융위기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옥석을 가리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이를 통해 신용질서를 정상화하자는 것이 이번 11·3 기업퇴출 작업의 기본 목적이다.그러나 멀쩡한 기업에까지 불확실성이 전염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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