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BIS 높여라˝ 대출기피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21 05:23

수정 2014.11.07 12:01


“돈을 빌려주자니 BIS가 울고….”

연말을 앞두고 은행들마다 대출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사이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기업들은 이미 지난달부터 치열한 연말 자금확보전에 돌입한 상태. 특히 ‘11·3 퇴출조치’에서 회생가능기업으로 분류돼 자금지원을 약속받은 기업들은 은행권에 신속한 자금 수혈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연말결산에서 BIS 비율을 최대한 높여야 하는 은행들은 신규대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은행 금고에 돈이 넘쳐도 BIS 비율을 떨어뜨리는 기업대출만은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식이나 회사채를 이용한 자금조달이 불가능한 중소·중견기업들은 극심한 연말 자금난에 시달릴 전망이다.

◇은행들의 BIS 딜레마=은행들마다 ‘살생부’ 역할을 하는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우량은행들은 연말 BIS 비율을 11∼12%, 비우량권 은행들은 9∼10%까지 올리겠다는 입장.

대기업 대출이 많지 않은 국민·주택·신한 등 우량은행들은 대출 수요보다 예금이 너무 많이 늘어 고민이다. 예금이 많아도 BIS 비율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택은행은 이달 들어서만 두차례에 걸쳐 3000억원 어치의 후순위채를 발행했고 신한은행도 1500억원 어치의 후순위채 발행을 마쳤다. 하나은행은 현재 2000억원 어치의 후순위채를 판매중이다. 급한대로 ‘보완자본’으로 간주되는 후순위채 발행을 늘려 BIS 비율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금리가 10%대 안팎에 달해 은행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빛·조흥·외환 등 주거래기업이 많은 은행들은 뒷돈을 대주어야 할 기업들이 줄을 서 있다는 게 문제다. 이들 은행은 특히 11·3 퇴출심사에서 정상 또는 회생가능기업으로 분류한 221개사에 대해서는 당초 약속에 따라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BIS비율과 대출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닫힌 대출창구=은행들이 일제히 BIS 비율 높이기 작전에 돌입하면서 은행 대출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박재환 한국은행 금융시장국장은 “4대 그룹은 이미 지난 9월부터 회사채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거둬갔고 회사채 발행이 봉쇄된 중소·중견기업들은 뒤늦게 지난달부터 은행 문턱을 두드리고 있으나 은행권의 BIS 문제 때문에 대출받기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국장은 “최근 들어 기업들의 외자유치가 다시 급증하고 있는 것도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이 주식이나 자산을 헐값에 파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관측된다”고 지적했다.


H은행 여신관계자는 “회생가능기업에 대해 자금지원을 약속한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부담”이라며 “대출요청에 응하기도,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실토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연말까지는 일반 기업대출을 최대한 줄이고, 특히 거액여신은 내년으로 넘기라는 게 내부지침”이라고 말했다.


J은행 관계자도 “건설업계 위기와 대우자동차 법정관리 등 악재가 겹치면서 국내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어 기업들의 신용위험이 IMF 직후 수준으로 증폭됐다”며 “최대한 보수적으로 기업여신을 운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 kyk@fnnews.com 김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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