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 꽁트] 남편에게 절대 배우지 마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22 05:23

수정 2014.11.07 12:01


남편에게서 운전을 배우면 이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골프를 배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운전이건 골프건 남편이 아닌 스승을 모시고 익혔다.

나는 운전 중이나 라운드 중에 싸움을 하는 부부를 숱하게 보았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설전은 피하려고 조심을 한다. 서로의 운전 습관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없고 가급적 부부의 골프 라운드는 삼간다.


며칠 전에도 남편과 골프연습장에 다녀오다가 싸움이 붙을 뻔했다.

먼저 공 바구니를 비운 남편은 땀을 닦으며 내 모습이 잘 바라보이는 곳에 앉아있었다. 내 스윙을 세심하게 살피는 남편의 눈이 매서웠지만 모른 척 해버렸다.

“한마디 하겠는데….”

클럽을 닦아서 자동차의 트렁크에 싣고 이만큼 달려오는 동안 용케 참았다 싶으리만치 입을 떼는 남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레슨이라면 사양하겠어요.”

나는 부부싸움의 불씨를 짓밟아 끄고자 했다.

“당신은 그게 문제야. 남의 조언을 받아들여야 실력이 향상되는거야.”

맞받아서 대꾸를 하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피해버리면 남편을 무시하는 악처가 될 판이었다.

“할 말이 뻔하니까 그렇죠. 그렇게 장구한 세월을 공을 치고도 임팩트도 못느낀다, 헤드가 최저점으로 내려갔을 때 공이 맞아야하는데, 꼭 퍼내는 식으로 친다, 이런 말이겠죠.”

나는 남편에게 허구한 날 지청구를 들어왔기에 무슨 말이 나올 줄 다 알고 있었다.

“당신은 이론은 제법 정립이 되었는데 실제로는 새로운 타법을 창안하려는 사람처럼….”

나는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높였다.

“내가 팔이 덜 나았단 말이에요. 좌우간 클럽헤드가 땅하고 접촉 안하는 방법으로 치려니까 타이밍이 어긋나면 토핑을 하는거죠.”

“내가 말하면 안 믿을테니까. 이 비디오나 보면서 연구를 해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골프 레슨 비디오테이프를 레코더에 넣고 돌린다. 솔직히 이론으로는 당할 수 없다. 우리 집에는 골프에 관한 비디오테이프가 50개도 더 있는데 남편은 그 중에서 나와 유사한 타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벤 호간의 레슨테이프를 단번에 뽑아내는 것이다. 나는 꼼짝없이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처럼 비디오 화면에 묶여있어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또 누구인가. 나는 이 남자와 20년을 한 이불을 쓰고 살았다. 20년을 같이 사는 동안 꼬리가 아홉 개로 늘었다. 그러니까 연습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어떤 테이프를 보여주리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어어? 이게 뭐야.”

화면에선 벌거벗은 남녀가 뒤엉켜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으니 남편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나는 연습장에 가기 전 포르노테이프에다가 벤 호간의 레슨테이프의 껍데기를 붙여 놓았다.


“뭐긴 뭐예요. 벤 호간이 시범을 보이는 것이지. 오늘밤에는 당신이 직접 나에게 가르쳐 줘봐요. 난 비디오대로는 영 안되든데….”

나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지는 남편을 향해 혀를 낼름 내밀었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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