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fn 프로 우먼―이상경 사장] 데이터와 13년…리서치는 ´제2의 동반자´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23 05:23

수정 2014.11.07 12:00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한 대중가요 가사처럼 그녀는 한 우물만 고집스럽게 파왔다. 이사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난 곳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 레스토랑. 광어를 좋아한다며 광어 스테이크를 시킨다.

서른 둘의 나이에 리서치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13년 간 이 분야에서 줄곧 일해오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난 뒤 또 다른 세계에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가 있는 현대리서치는 연간매출 30억원을 올려 국내 리서치시장에서 동종업계 매출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특유의 섬세함을 무기로 척박한 시장조사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기까지 그녀의 경력은 이채롭기만 하다.
우선 연세대 75학번인 그녀는 학부에선 사회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대학원은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석사과정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졸업도 하기 전 올해 수능시험을 치른 외동딸 민영이를 낳았다. 남편은 선배이자 연세대 동문으로 지금은 제주대 사회학과 조영일 교수.

이 사장이 지난 83년 대학원을 마치고 첫 일자리를 잡은 곳이 한국여성개발원.

공채 1기 연구원으로 입사해 여성개발원에서 4년 간 여성관련 정책과 리서치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정부기관의 시장조사 업무를 주로 맡았다. 지난 87년 여성개발원을 나와 그동안 그곳에서 갈고 닦은 조사업무를 바탕으로 당시로는 벤처기업이라 할 수 있는 현대리서치연구소를 차리고 자기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 대통령을 직접 뽑는 선거가 있었어요. 국민들의 의식조사에 대한 수요가 넘쳤지요. 시장조사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구요. 주위에서 조사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며 자꾸 해보라고 권한 것이 리서치사업을 시작한 결정적인 동기가 됐습니다.”

이때 뜻을 같이 한 사람이 클레오 대표 이현옥씨 등 다섯명이다. 모두들 200만원씩 출자해 회사를 설립했다. 젊음과 자신감을 무기로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그녀를 제외한 창업 동업자들은 3년도 되기전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모두 자신의 개인적인 비전을 찾겠다며 갈길을 갔어요. 국회의원 출마를 하겠다며 떠난 친구도 있었고,다른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으며,공부를 더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전 이분야에서의 성공을 예감했어요. 아직은 충분히 개척할 여지가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 거죠.”

선거철이 지나면 정부 기관의 프로젝트를 부지런히 따냈고,기업 마케팅조사에도 손을 댔다.

그녀는 서서히 원숙한 리서치 사업가로 자리를 굳혀갔다. 그러나 명성이 쌓이는 만큼 그의 조사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로부터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다. 리서치 결과에 순위가 밀리거나 뒤지는 쪽에서 온갖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기업과 주요기관들 뿐 아니라 언론사에서도 항의가 들어왔어요. 경쟁사에 조금이라도 밀리면 정말 듣기 민망한 욕설까지 마구 퍼붓는 통에 집 전화번호를 몇 번이나 바꿔야 했지요. 그러나 전 그런 항의에는 절대 굴복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조사자체에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90년대 후반 들어 우리나라에 인터넷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현대리서치의 조사기법을 인터넷 시장에 접목하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이때 그가 모델로 삼은 것인 미국의 미디어 메트릭스. 미디어 메트릭스는 700여 회사를 대상으로 웹사이트 조사자료를 제공하면서 순식간에 6억달러 규모의 기업가치를 가진 업체로 떠오른 웹사이트 전문조사업체. 지난해 9월 현대리서치연구소가 문을 연 ㈜인터넷 메트릭스는 바로 한국의 미디어 메트릭스인 셈이다.

인터넷메트릭스는 현재 각종 웹사이트에 대한 방문자수와 페이지뷰,이용자들이 얼마나 방문하고,얼마간 머물렀는지를 조사해 순위별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웬만큼 성공한 여성에게는 뒤를 봐주는 남편이 있게 마련인데 이상경 사장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남편에 대해 “경영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며 “사업에 전혀 보탬이 안된다”며 마냥 웃었다. 남편이 제주도로 간 때가 86년도였으니 15년 동안 이들 부부는 그의 표현처럼 ‘월말부부’ 아니 ‘방학부부’로 살았다.

그는 14년 간 사업을 하면서 구축된 자신의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사업의 가장 큰 재산으로 꼽는다.

“사업초기엔 석달간 밤잠을 설치며 작업한 프로젝트가 성사직전까지 갔지만 윗선에 줄을 댄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 사업네트워크의 위력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때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절대적이라고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녀는 그후 여자들에게 특히 취약한 인맥쌓기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고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무조건 만나자고 매달리기도 했고,자신을 필요로 하는 조직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갔다.

서울대 정보통신대학원을 어렵사리 나온 것과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 상임이사,서울시 여론조사심의 위원,여성발전기금 관리위 위원,기획예산처 행정개혁위원회 위원 등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것도 모두 이런 배경때문이다.
현재는 올 5월부터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차관급 비상임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왕성한 활동에 쉴틈없는 그녀지만 마지막 꿈은 “아름다운 노후를 맞이하는 것”이란다.


“10년 후에도 이렇게 마냥 뛰어다니기만 하며 살 수는 없지 않겠어요. 차분히 정리하고 마지막 여유를 부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이상경 사장은

1955년 경기도 미금시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립학교 이사장과 교장선생을 지냈고,그 덕분에 이사장의 어린시절은 유복한 편에 속했다.그러나 항상 따라다니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언제나 서울로 향한 탈출을 꿈꿨다.

이화여고로 진학하면서 그의 ´탈출´은 성공했다.연세대를 다닐 때는 졸업후 영화감독을 꿈꿀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다.엄마를 닮은 탓인지 얼마전 수능시험을 본 딸 민영이는 앞으로 사진과 영화를 전공하고 싶어한다.

남편 조영일 교수는 대학때부터 알고 지낸 선후배 사이.지난81년 이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결혼해 졸업논문 마감 100일을 남겨놓고 딸 민영을 낳았다.

지난83년 한국여성개발원에서 4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87년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현대리서치연구소를 설립했으며,14년간 리서치업계에 몸담으며 익힌 조사노하우로 지난해 9월 ㈜인터넷메트릭스를 설립했다.

왕성한 사업을 하면서 여사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만의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탄탄히 구축해 놓고 있다.그는 현재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차관급 비상임위원과 서울시 시정여론조사심의위원,여성발전기금 관리위 위원,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 이사 등으로도 활약중이다.

/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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