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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방한과 한반도―러시아 석학에 듣는다]남―북―러 3국간 경협합의 전망

김종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2.21 05:49

수정 2014.11.07 15:54


오는 27∼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본지는 ‘한반도와 러시아의 관계’를 정밀 조명하기 위해 한양대학교 이재영 교수와 러시아 석학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러시아사회과학원 산하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의 아시아태평양분과위원회위원장인 마리나 트리구벤코 박사는 51년동안 북한문제를 연구해 왔다. 마리나 트리구벤코 박사는 이재영 교수와의 대담에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한반도문제에 대해 폭넓고 밀도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편집자주>
―이재영 교수=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한의 화해협력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측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리나 트리구벤코 박사=남북한이 오랫동안 준비한 것으로 성과가 아주 크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지속적인 노력과 주도권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중국도 이 회담을 위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러시아도 ‘신 북·러 선린우호협력 조약’체결 이후 전면적으로 북한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이교수=지난해 7월 푸틴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 간의 관계가 현저히 회복되는 듯 보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트리구벤코 박사=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측은 형제애로 매우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북한 군부와 상층부의 상당수가 옛소련에서 유학했는데 이들은 러시아어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외교적인 측면에서 양국관계에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즉 양국이 장기적인 파트너로서 또 이웃으로서의 관계 발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 북한과의 접촉은 별로 없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북·러 협력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대기업과 북한 간의 관계도 부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푸틴 방북 이후 큰 기대를 했으나 대체로 현재 북·러 경제협력에 큰 진전은 없는 실정입니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개최된 제3차 북·러 경제공동위윈회에서 양국은 에너지·석탄산업·운송·공동어업·과학기술협력 분야에서 커다란 협력 방향만 정했지 구체적인 협정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평양발전소 현대화에 필요한 3억달러의 지원 요청에 대해 러시아가 결정하지 못했고,김책제철소의 현대화 문제도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이는 정상 수준에서 결정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측으로부터 획기적인 조치가 없기 때문에 북한은 낙담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 대표단들이 지역적인 차원에서 경제협력을 위해 러시아를 많이 방문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북·러 협력관계는 사하공화국,케메로보주를 포함한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등 지방차원에서 활성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교수=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정세변화로 인해 한반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철도운송 분야의 협력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북한과 러시아간의 운송협력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트리구벤코 박사=부산∼핫산을 잇는 경원선을 통한 한·러노선도 전망이 밝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측의 태도가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는데,북한의 태도는 시간 문제라 생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개인은 조속히 개방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대대적인 개방을 원하지 않는 북한 군부의 압력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운송협력을 위해서는 부처간의 협력이 필요하며 앞으로 5∼7년 후에 이 프로젝트는 실현 가능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확충과 현대화,북한내 철도시설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러시아는 북한 전체 산업의 현대화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몇 분야를 제외한 남북한과 러시아의 3자간 경제협력의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이교수=지난해에 이어 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또 한차례 중국을 방문해 중국 지도부와 여러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하였고 경제특구내의 산업시설을 둘러봤습니다. 김 국방위원장 중북 방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트리구벤코 박사=외형적으로 볼 때 이는 투자유치를 위한 일종의 ‘시위 행위’라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과 같은 경제특구를 설치하려고 하지만,중국과 베트남처럼 농촌부터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고 제한된 경제특구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외국인투자를 그다지 많이 유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농업부터 개혁하여 2단계에 경제특구를 설치한데 반해 북한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여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투자유치를 위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서방 자본은 아직 등소평보다는 김정일의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죠. 정치적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서방자본이 아직 북한으로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우 경제특구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를 생산한 반면,김정일의 경제특구 설립 계획이 실행되면 여기서 북한 GDP의 30%를 생산 가능할 것이라 평가합니다.

―이교수=지난 90년대 초 급속히 악화되었던 북·러 관계가 지난해 신 북·러선린우호협력 조약의 체결과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북·러 관계의 회복 및 발전이 향후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트리구벤코 박사=사실 푸틴이 등장한 이후 북·러 관계는 지난 10년간보다 더 큰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김 국방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김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러시아의 경험을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한반도 안정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가 오고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북·러 관계의 진전이 한·러 관계와 한반도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이교수=이달 말에 푸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한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방한 기간중에 어떤 내용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십니까.

▲트리구벤코 박사=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한국만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푸틴의 방한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푸틴의 지도 방식은 직접 방문해서 보고,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방한을 통해 푸틴은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푸틴은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부채 해결과 한국의 대러투자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합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리나 트리구벤코 약력

▲67세

▲국립 모스크바대학교 경제학부

▲소련 과학원 세계사회주의체제연구소 경제학박사

▲저서:북한의 공업 및 농업에 관한 연구

남한의 경제발전 개요 등 다수의 논문

/정리= 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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