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 사설] 흔들리는 개혁정책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5.06 06:09

수정 2014.11.07 14:36


정부의 개혁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여야할 것없이 당리당략만 강조하는 가운데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표류하는 있다. 이대로 나간다면 개혁은 물건너간 것과 다름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그도 그럴 것이 최근 잇따라 발표된 정부의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중요한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이 일시적 인기영합이나 정파적 이익에 좌우되면서 개혁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남미 경제의 예에서 보듯이 경기침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구조개혁의 지연이다.피할 수 없는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우리경제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구조조정을 통해 기초경제여건을 강화하는 것만이 예기치 못한 외부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경제는 외환위기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냉탕 온탕을 거듭하면서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그나마 최근들어서는 소비자 및 기업 신뢰지수와 더불어 산업생산 역시 3개월째 상승행진을 벌이면서 지난 하반기 이후 침체국면에 빠졌던 한국경제가 바닥권을 벗어나고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외환보유고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가 급감하고 있다.수요가 늘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업 가동률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투자규모도 줄이고 있어 기업 설비투자는 5개월째 하락행진하고 있다.수출 역시 지난 3월 1.8% 감소한데 이어 지난 4월에는 9.3%나 줄어 감소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정부가 경제운영을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안정적 성장기반을 마련하느냐 아니면 다시 주기적 위기설에 시달려야 하느냐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선심성 정책 남발

사정이 이런데도 즉흥적인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면서 개혁이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지난 4일 정부와 민주당이 실업대책과 건강보험 재정확충, 지방세교부금 지급 등을 위해 올해 5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국가채무 축소와 재정건전화가 국가 최우선과제인 상황에서 세계잉여금은 추경예산을 편성하는데 사용해야하는지 아니면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하는지는 논의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추가공적자금 투입 예상 등 중기재정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난해 총선을 전후해 정부가 내세운 각종 선심정책과 앞당긴 복지정책이 재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여당이 오히려 재정건전화를 역행하는 쪽으로 법을 바꾸면서까지 추경 조기편성을 강행하려는 것은 경제원칙과 시장논리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정치논리로 밖에 볼 수 없다.지난 3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투자심리를 회복시키는데 중점을 두면서도 구조조정은 원칙대로 진행시키기로 했다는 것 역시 어정쩡한 정부의 개혁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이라는 상충되는 과제에 대해 어느 한 쪽도 놓치지 않겠다는 논리다.

손쉬운 해결책에 집착

임시변통식의 손쉬운 해결책만 취하는 것도 문제다.연·기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하는 등의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증시부양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정치논리를 우선한 결과다.서민금융을 근본적으로 활성화할 제도적 마련은 뒷전으로 하고 금융당국이 은행들로 하여금 신용불량자 기록을 삭제하도록 하는 것도 원칙없는 정부 개입이 금융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사례다.금융기관의 건전경영을 감독해야 할 정부로서는 취해야 할 효과적인 정책은 아니다.

최근들어서는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요 개혁의 추진이 사회 여러 부문에서 이해당사자간 분규와 대치를 초래하고 있다.아직도 사회 각부문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가운데 정부의 일관성 없고 때로는 원칙을 무너뜨리는 정책이 갈등을 조장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근본적인 해결책은 뒷전으로 하고 오로지 경기가 호전되고 증권시장이 활성화되기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 끝내고 시장에 의한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조차 하다.미국과 일본 등 세계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3∼4%의 경제성장률은 우리의 경제능력에 비추어 낮은 수준이 아니다.오히려 그 이상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할 때 부작용이 초래될 수도 있다.재정·금융 등 거시정책을 사용해 무리하게 성장률을 높이려 해서는 안된다.정치권에서는 경기부양 대신에 국제 분업구조 아래에서의 산업구조 개편 방향은 물론 산업의 생산성 및 효율성을 높이는데 당내 에너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