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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특허전쟁 ‘신호탄’


미국 클리블랜드 대배심이 지난 9일 2명의 일본인 연구자를 산업스파이 혐의로 기소한 것은 세계 바이오산업의 주도권 다툼이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99년 당시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재단(CCF)에서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관여한 오카모토 다카시가 세리자와 히로아키 캔자스대학 조교수와 공모해 DNA샘플과 시약, 연구업적 등을 빼내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에 제공했다는 혐의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오카모토와 리켄측은 이같은 혐의내용을 부인하고 있지만 2년동안 뒤를 밟아온 미 연방수사국(FBI)의 손아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리켄은 4명의 전문가로 내부조사팀을 만들었으며 문부과학성도 정무관을 중심으로 조사팀을 설치해 대책마련에 나섰다.

이번 사건은 21세기 주도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세계 바이오시장을 둘러싼 패권다툼의 성격이 짙다. 정보기술(IT)에 이어 바이오산업 부문에서도 세계시장을 장악하려는 미국과 이를 뒤쫓고 있는 일본·유럽간의 힘겨루기가 노골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된 ‘뇌연구’ 부문은 과학자들에게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미답의 영역’이다. 미국은 90년대를 ‘뇌 10년’으로 규정, 연구자수나 연구비를 대폭 늘려왔다. 미 정부가 뇌연구에 투자하는 비용은 미 국립위생연구소(NIH)만도 연간 약 1조2000억원, 연구자 수는 총 2만5000명에 달한다. 유럽도 91년에 ‘유럽 뇌 10년’ 위원회를 발족시켜 뇌연구에 박차를 가했으며, 일본은 리켄이 설립한 뇌종합과학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추격에 나섰다.

일본의 경우 인간유전자 해석 등 기초연구에서 미국에 뒤져있지만 산·민·관이 힘을 합해 미국·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정부는 99년 만든 바이오산업 기초전략에 따라 98년도에 1800억엔이었던 관련 예산을 99년도에 2600억엔으로, 2000년도에는 약 3000억엔으로 늘렸다. 일본 산업계도 유전자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는 ‘바이오 신약’에 힘을 쏟고있다. 13개 주요 의약품업체의 올해 연구개발비를 전년도에 비해 6%이상 늘려, 총 연구개발비가 6000억엔을 넘어섰다. 바이오테크놀로지 관련 특허건수만을 보면 95년 미국이 전체의 42%(672건)으로 일본의 36%(576건)를 크게 웃돌았지만 99년에는 일본이 45%(1076건)으로 미국의 38%(908건)을 앞질렀다.

이번 사건은 지난 82년 히타치와 미쓰비시 직원이 컴퓨터관련 기업비밀을 훔치려다 FBI에 체포된 ‘IBM 산업스파이 사건’을 연상시킨다. 당시 양국은 정부주도아래 대형컴퓨터 개발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은 개발 대상이 대형컴퓨터에서 바이오로 옮겨졌을 뿐이다. 바이오부문은 컴퓨터에 비해 기초연구 비중이 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일본은 리켄을 중심으로 정부·대학·기업이 협력하는 산·학·관 연구체제를 갖춰가려던 참이었다.

이번에 적용된 산업스파이법은 클린턴 정권하인 96년, 바이오나 정보통신 등의 첨단기술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미국이 자국의 첨단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전에 비해 대상을 소프트웨어, 기획 아이디어 등으로 확대했으며 벌칙도 대폭 강화됐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는 기초과학이나 첨단기술 정보에 대한 일본정부와 과학자들의 자세가 너무 안이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구성과나 재료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는 일은 이미 ‘상식’이 되고 있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연구재료를 가지고 나와도 큰 문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계약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iychang@fnnews.com 도쿄=장인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