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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사설] 대기업 규제완화는 전략적 과제


내년 대선까지 1년7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최근 여당 최고 위원들이 제기했던 개혁마무리론은 이같은 시간적 한계를 감안할 때 납득이 가는 대안이다. 그동안에는 개혁의 흑백논리에 파묻혀 건전한 비판마저 수용하지 못하고 개혁을 점검하는 것조차 반개혁이니 수구세력이니 하는 대결구도만 있어 왔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개혁에 역행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대기업 규제완화 문제가 정부의 경제관련 장관들과 국회의 여야 경제통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벌인 난상토론의 주제로까지 이어진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최근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대기업 규제완화’라고 부르지 말고 ‘기업경영환경개선’이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명칭이야 어쨌든 정부와 재계가 재벌규제 완화에 대해 6월까지 최종 결론을 내기로 하였고 이를 위해 특별팀까지 만들어 이미 2차례 회의를 가지는 등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에 들어가 정부와 재계가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는 공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에 들어가면 정부와 재계간 현실을 보는 인식 차이와 신뢰 부족이라는 깊은 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태 벗지 못한 규제논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집단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30개 집단의 순위가 뒤바뀌고 지배주주가 바뀐 경우가 수두룩하거니와 절반 정도는 그룹 자체가 해체됐다. 대기업집단도 과거와 같은 선단식 경영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게 되었고 개별 기업차원의 경영개선 노력이 올바른 생존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엄청난 외형적 구조조정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이것이 기업들의 형식적 구조조정 때문인지 아니면 대기업에 대한 정책방향이 잘못된 것인지 구분하기는 더욱 힘들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국내외 경영환경이 천지개벽을 할 정도로 바뀌었는데도 우리의 재벌정책에 대한 논의는 아직 과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의 관치금융 아래에서 더욱 확대된 정부의 영향력과 각종 규제정책이 일부 부문에서 정경유착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의혹을 오히려 더욱 증폭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문어발식 경영이나 무모한 다각화 등 재벌이 가지는 폐해를 막기 위해 30대 기업집단 지정과 같은 다양한 규제를 해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해 ‘5+3원칙’을 도입, 강도 높게 재벌을 규제해왔다. 사실 이같은 규제정책은 외환위기 직전까지 방만한 외형위주, 차입경영, 불투명 경영으로 수익창출과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한국의 재벌들이 자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시장을 관통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부할 수 없는 이상 우리 기업들이 기업지배구조 면이나 재무구조 면에서 구태를 벗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도하기 전에 생존을 위해 기업 스스로 추구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규제완화를 빌미로 재벌의 오너들이 불투명한 경영 행태와 과거의 무리한 외형위주 차입경영 행태 등을 되살리려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재계는 경영의 투명성확보 등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키는 점에서는 오히려 자체 규범을 강화, 정부의 권고 수준을 넘어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성장의 전략요충

그러나 만일 정부의 재벌 규제가 기업의 투자와 수출 확대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나아가 우리 경제의 성장전략에 차질을 빚는다면 정부로서는 세심한 반성과 철저한 개선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투자와 생산, 고용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대기업이 글로벌한 환경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협력 중소기업들이 여기에 따라서 투자하고 생산,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 우리 경제의 성장패턴이며 성장전략이다.

이런 의미에서 재벌에 대한 기존의 규제가 대기업 본연의 투자�^수출활동에 장애가 된다면 재벌규제는 우리 경제의 전략적 측면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지금 세계경제 현실은 국경을 넘어선 시장개척과 새로운 사업의 기회 창출을 위해 각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경쟁하고 있는 모습이다.
각국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에 전력을 다하는 등 정부의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도 대기업들이 급변하는 국내외 경쟁여건에 순응하여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경제적 도약이 가능하고 산업적 차원의 원활한 구조조정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